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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기업 탐구: 신라면 블랙으로 들여다 본 농심 2

2020-12-30 15:53:49

신라면 블랙의 가격은 950 원 내지는 1100 원이 적정했을 것이다. 

만일, 그 가격에 출시가 되었다면, 대중들의 반감을 크게 사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로 인한 과정금 사태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국의 처분을 받는 것이 꼭 법의 기준에 어긋나서가 아니다. 

대중들의 성토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심은 당국의 과징금 처분 후에, 악화된 여론에 부담을 느껴 생산 중단을 결정했으나, 이듬 해에 다시 조용히 재출시하기 시작했다. 

농심은 여전히 프리미엄 라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듯 하다. 


라면은 더 이상, 혼분식의 구황식이 아니다. 

이제는 가정식과 함께 맛과 별미로 즐기는 음식이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라면을 섭취하는 이들은 소수이다. 

대중들은 프리미엄 라면을 충분히 수용할 소득 수준이 되었다. 

싸서 먹는 게 아니다. 

가정식 대용으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익숙한 대체 별미인 것이다. 

이제, 더 맛 좋은 라면을 기대하고 있고, 그만한 품질이라면 기꺼이 값을 지불할 여력이 된다. 

농심이 프리미엄 라면을 내세운 것은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대응한 것이다. 

신라면 블랙이 가격에 상응하는 맛을 갖췄다면, 고가 논란도, 과장 광고도, 잠깐 진통을 겪기는 해도 다 수월하게 넘길 만 한 수준이었다. 

신라면 블랙으로 말미암아, 제 2의 스테디 셀러를 모델로한 프리미엄 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육개장, 짜파게티 등도 얼마든지 순조롭게 출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리미엄 라면의 첫 수부터 패착이 되고 말았다. 


신라면 블랙은, 분명히 국물에 있어서 상당한 연구를 한 흔적이 보인다. 

매운 맛보다는, 남녀노소가 부담없이 즐기기 좋은 깊고 부드러운 맛에 중점을 두었다. 

농심이 가진 전형적인 강점이다. 

하지만, 매운 맛으로 최고의 스테디 셀러로 등극했고, 그 것이 신라면의 개성이었다. 

새로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더하면서도, 매운 맛을 공존시킬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쩌면, 라면이 인스턴트 식품이라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을 의식해서, 자극적인 맛을 의도적으로 줄인 것으로 보인다. 


농심은 항상 웰빙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한 상품을 다양하게 출시해 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진 대중들이 이제는 음식의 유해성이나 안전성을 따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잘 간파한 것이다. 

당장에 신라면에 익숙한 대중들이 시큰둥하겠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사가 자극적이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몰린 대중들은 점차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길들여 지게 될 것이고, 언젠가 선택권이 없는 신라면 블랙을 다시 선택할 거라 믿는 듯 하다. 

물론, 이 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신라면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인터넷 여론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나 또한 신라면이 정말 내가 좋아 하던 그 라면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어 졌다. 

최근에 출시한 신라면 건면도 유한 맛이지, 칼칼한 맛이 아니다. 

나는 이 라면이 신라면브랜드가 아닌, 다른 제품이라고 볼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입해 볼 적에, 대중들을 신라면 블랙으로 몰아 가고 있는 듯 한 늬앙스를 느끼게 된 것이다. 

도리어, 신라면 컵라면 제품들, 신라면 큰사발, 신라면 소컵, 신라면 블랙 컵이 예전의 신라면 맛에 상당히 근접했다. 


신라면 블랙은 대중적 스테디셀러 화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것은 해외의 얘기이고, 국내에서는 어디까지나 선뜻 구매하기 주저해 지는 라면의 이미지로 매대 한 켠에 진열돼 있다. 

그렇다면, 신라면 블랙은 이렇게 애매한 위상에서 자리만 지킬 것인가? 

농심이 이대로 주저 않지 않을 것이다. 

제품이 가까운 시기 안에 리뉴얼될 거라 보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의 다른 장수 라면들이 프리미엄 화해서 다시 출시될 것이라 본다. 

새우탕면, 우육탕면이 그렇 듯이 말이다. 

언젠가 한 제품이 크게 흥행하고 난 뒤에 신라면 블랙을 리뉴얼해서 전면에 다시 내 놓을 것이다. 

농심은 이제 경쟁사들과 프리미엄으로 차별화를 두고자 하는 것이다. 

타사는 싸고 괜찮은 제품을 내 놓고, 농심은 프리미엄 제품을 내 놓는 고급 기업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심은 가장 상징적인 신라면 블랙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제품은 기업이 만드는 것 같지만, 실은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 간다. 

대중들은 마냥 비싼 라면을 바라는 게 아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제대로 잘 만든 라면을 원한다. 

시중 라면 제조사 중에 유일하게 이 과업을 성공할 수 있는 기업 또한 농심이다. 

나는, 농심이 신라면 블랙을 비싸게 판다고 해서 나쁘게 보지 않는다. 

나 또한 신라면 블랙을 먹으면서 돈이 아깝다고 느끼는 사람이지만, 더 나은 신라면 블랙을 기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라면 4사, 농심, 삼양, 오뚜기, 팔도 제품을 안 먹어 본 이는 한 명도 없다. 

나 또한 라면을 상당히 즐기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맛을 보지만, 농심이 가장 연구를 많이 하고, 조화롭고 깊은 맛을 낸다. 

CEO가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열정적인 기업인데, 라면 맛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라면 시장에 국한해서 보면, 최근 농심의 행보는 다소 외줄을 타는 듯이 불안정함을 조금 보인다. 

타사에서 내놓은 신제품이 유행하면, 부랴부랴 따라 가는 제품을 내 놓는다. 

이 건 농심이 하던 행태가 아니다. 

농심의 스테디 셀러는, 항상 타사에게 점유율을 뚫을 수 없는 큰 중압감이자, 따라 잡아야 할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타사에서는 아예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제대로 자극적인 맛과 색다른 컨셉의 신제품을 내 놓는다. 

건강이나 유해성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라면은 라면일 뿐이니까, 싸게 즐기자는 것이다. 

반면에 농심은 그렇지를 못 하다. 

유행은 따르되, 자극적인 맛은 최대한 자제한다. 

이러니 맛은 애매하고,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소극적 대응에 불과한 것이다. 

신제품도 신통치 않고, 스테디 셀러도 꾸준히 팔리기는 하지만, 맛이 예전같지 않다는 풍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기대를 거는 것은 자연스레 프리미엄 제품군인데, 최근에 출시한 새우탕면과 우육탕면은 대중화에 실패했다. 


라면의 프리미엄 화는 분명히 라면 시장이 가야할 길이 자명하다. 

그 선두에 선 농심의 앞 길이 다소 어둡다. 

이대로 시장의 점유율과 인지도에 안주하고자 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라면 시장에서 기득권이니까, 이쯤 되면 성공을 자축하고, 쉬고 싶을 것이다. 

당장의 전망은 밝지 않지만, 농심의 브랜드 프리미엄 화는, 현 창업주의 숙원이므로, 여러 시행착오 끝에, 신라면을 뛰어 넘는 새로운 프리미엄 스테디 셀러가 등장할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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