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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춘양면 의양리의 지세 2

2020-12-30 16:23:22

춘양면의 중심부와 마을을 둘러 보았다. 

강릉 발, 대구, 부전 행 기차가 관통하는 춘양역, 봉화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 버스 터미널이 있다. 

외에도 관청, 은행, 우체국, 억지춘양 전통시장, 마트, 편의점, 공원, 학교, 전통 문화재 한옥 등, 시골이지만 엄연한 읍내의 버금가는 모습이다. 

기차역이야 그렇다 쳐도, 보통 시골에서 버스 터미널은 읍내 한 곳에만 있는 데 반해, 춘양면에는 별도의 터미널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억지춘양이라 불리는 전통시장 안에는, 비록 옛 모습에 멈춰 있는 상점들이 종종 보였지만, 꽤 큰 규모였다. 

협소한 시장 길목이 아닌, 높은 천저을 씌우고, 2차선 만 한 길목이었다. 

이 만한 규모에는, 이 만 한 인구가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것이다. 

알고 보나, 춘양면은 봉화읍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마을이다. 


억지 춘양이란 말을 한 번 쯤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억지 춘양의 어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이, 광복 후 자유당의 정문흠 의원이 자신의 고향이었던 춘양면으로 철길이 들어 서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지도에서 철길의 형태를 보자면, 실제로 춘양면 의양리를 한 바퀴 빙 둘러서 나 있다. 

의양리에서 다소 떨어진 춘양 삼거리를 경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말이다. 

자신의 고향이라는 애향심도 없다고 못 하겠지만, 당시에 춘양면은 봉화읍과 인구가 비슷했었다. 

어차피 철로가 지나 간다면, 오지 같은 위치를 극복할 겸, 많은 춘양면민이 기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내는 것이 훨씬 교통적으로 나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억지로 춘양 쪽으로 철길을 냈다고 해서 억지 춘양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둘 째는, 아까 언급했던 춘양목이 워낙에 인기가 좋자, 춘양목이 아닌 타 지역에서 난 소나무를 억지로 춘양목이라고 우겨서 억지 춘양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네에게 고전으로 익숙한 춘향전의 얘기이다. 

변 사또가 춘향이에게 억지로 수청을 강요하면서, 억지 춘양이란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들이 난무하지만, 아무래도 철길설이 가장 유력하게 통용되고 있는 듯 하다. 


시장 주변의 상점들은 전형적인 시골 가게의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개 중에는 신식으로 짓거나, 인테리어를 한 상점들도 보이지만, 많지는 않다. 

어차피, 이 곳을 찾는 이들은 같은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임대로 운영하는 상점도 있겠지만, 건물 주인이 직접 가게 운영도 하고, 거처도 같은 건물에서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래 전 개업했을 당시 모습 그대로이다. 

서울 한 복판의 도심에서의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는 모습과 아주 판이하다. 그런다고 손님이 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을 나와 의양리의 중심부를 둘러 보았다. 운곡천은 지대보다 꽤 낮고, 폭도 넓은 개천이었다. 

서울의 한강처럼 개천을 따라 조깅, 자전거, 산보할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 놓았다. 

사람이 살아 가는 데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물이다. 

요즘이야 수돗물 없는 집이 없지만, 과거에는 운곡천이 맑아서 식수로도 쓸 수가 있고, 다양하게 생활 용도로 활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운곡천이 없다면, 오늘 날 이 춘양면 의양리 터는 사람이 모여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운곡천은 춘양면민이 삶의 여유를 찾고, 사색을 할 수 있는 천연 레저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식당에 들러서 식사를 하면서, 주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현지인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 보았다. 

영남 사람이니까 영남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딘가 모르가 산골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가 살짝 묻어 나온다. 

일전에 태백과 가까운 석포면에 다녀 왔지만, 같은 봉화지만, 말투가 태백 사투리와 상당히 유사했다. 

거의 영남 말씨라기 보다는 강원도 말씨에 가까웠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같은 봉화군이라도, 석포면은 실 생활권이 태백시와 가깝고, 춘양면은 봉화읍에 가깝다. 

고로, 이 두 마을끼리는 교류가 많이 없었던 듯 보인다. 

생각해 보라. 석포면민이 장을 보거나, 시내에 들를 일이 있다면, 차라리 지리적으로 태백이 가깝지, 춘양면은 거리가 먼 것이다. 

같은 봉화군이지만, 이렇게 다르다. 

산골의 연속인 지리 탓에, 왕래가 쉽지 않고, 이 것이 지역마다의 독자적인 문화와 생활상을 빚어 낸다.


면민이 거주하는 마을을 둘러 보았다. 

우리네 70~80 년대 식 양옥집 모습들이 바둑판 식으로 밀집한 것이 꽤 보였다. 

강원도에서 많이 볼 법 한 허름한 시골집들은 그보단 적었다. 

이따금 전원 주택도 보이고, 빌라와 아파트도 조금 들어서 있었다. 

이로 보아, 봉화군 내에는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약간 나은 계층이 모여 산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구 수는 많지 않았다. 

물론, 의양리에 한정한 것이지만, 봉화군 인구가 참 면적 대비 적다. 

의양리는 춘양면, 더 나아가 봉화군의 한 축 역할을 하는 곳이지, 규모가 있는 마을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보이는 한옥 고택들이, 양반들이 학문을 수학하던 마을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들이 파고 들었던 학문은 무엇이었으며, 왜 전국 많은 명당 자리 중에 이 곳으로 왔을까? 

그리고, 그들이 거처했던 고택들은 우리들에게 춘양면 의양리란 어떤 곳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춘양면은, 치열한 도심의 생활을 탈피하고, 백두대간의 한 복판의 수려한 풍광을 벗삼아 살기에 참 좋은 곳이다. 

하지만, 완전히 속세를 등진 채 은자로 살지 못 하고, 어느 정도 세인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살고픈 이들에게는, 교통과 시장, 기본적인 편의시설을 갖춘 춘양면은 모자랄 것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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