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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태백의 지세 2

2020-12-30 17:50:36

태백산은 외형적으로 그다지 멋스러운 산은 아니다. 

설악산처럼 수려한 멋이 없고, 아주 단순하고 투박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전형적인 흙이 많은 토산임과 동시에, 군데군데 바위들도 보인다. 산세가 평이하고 완만하다. 

그래서, 태백산은 산행하기 어렵지 않고, 푸근하면서도 흙의 기운을 많이 받아 갈 수 있다. 

가장 많이 찾는 유일사와 당골길이 있는데, 당골이 걷기 쉽게 길이 잘 닦여서 초심자들이 등산하기에 부담이 없다. 

여름에는 높이가 거의 10 메터 가량에 달하는 나무들이 왕성해서, 쾌적한 공기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청량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상쾌하다. 

여름 피서지로도 그만이다. 

정상 부근에 갈 수록 태백산에 서식하는 주목군을 볼 수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또 천 년이라는 수명의 주목은, 장구한 세월의 풍파를 말없이 인내하며 우리 민족의 끈기를 말해 주는 듯 하다. 

정상에서 바라 보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세는, 태백산을 떠나 대한민국의 국토를 근사한 금수강산으로 꾸미기 위해 바삐 떠나는 모습이다. 

백두대간의 최절정처럼, 아득한 옛날, 조물주는 화려한 교향곡의 클라이막스를 이 태백산으로 빚는 것을 상상해 본다. 


태백산 정상에 와서 천제단을 들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아마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날씨가 악천후일 때 빼고는 말이다. 

이 곳은 민족의 영산으로써, 사심을 버리고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이 출입해서 축원문을 올릴 자격이 있다. 

무속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단순히 참배할 것이라면, 조용히 둘러 보고 나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장군단이 있고 하단도 있는데, 장군단이 천제단보다 약간 높고, 하단은 천제단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다. 

장군단은 영적인 교감을 하는 자들이 그 곳에서 신기를 돋구는 곳이고, 하단은 개인 소원을 비는 곳으로 돼 있다. 

천제단이라고 해서 마냥 소원이 잘 들어 줄 거란 생각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비는 것은 하단이 적합하겠다. 


정상부 한 쪽에 망경사라는 절이 있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판매하고 있으니, 별미로 맛을 봐도 좋을 법 하다. 

망경사 바로 앞에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우물이라는 용정이 있다. 

뭇 대중들이 목을 축이므로써, 등산의 고단함을 풀 수 있도록 바가지도 마련해 놓았다. 

단, 한 겨울에는 얼어서 맛을 볼 수 없다. 


9부 능선 즈음에 위치한 단종비각이 자그맣게 들어서 있다. 

기록에 의하면, 숙부에게 왕좌를 찬탈당한 뒤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에게, 추익한이 태백산의 과일을 따서 진상하였는데, 그러다 어느 날 추익한의 꿈에서 단종이 백마를 타고 가는 것을 기이하게 여겨 단종을 찾아 가니, 이미 단종은 눈을 감은 뒤였다. 

후에 단종은 그러한 연으로 태백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단종을 비운의 왕세자로 보기 보다는, 그 당시 왕가의 권력 암투를 통해, 우리 세대의 민중이 어떻게 정치를 바르게 인식하고 참여하는 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설령,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신하들을 이끌 만 한 힘이 없거나, 주변에 섭정으로 보좌하는 후원자가 없다면, 역신에게 몰려 더욱 험한 상황에서 왕좌에 내려 왔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를 통해, 현 시대의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점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참배하는 것이 바른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태백 주민들에게 태백산은 어떤 존재감일까? 태백 시내의 여러 상점이나 식당에 들르면, 대부분 태백산의 사진을 크게 걸어 놓았다. 신앙의 대상인 지, 경외의 대상인 지, 단순히 장식을 위해 걸어 놓은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태백 주민들에게 태백산을 분명히 자랑스레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태백에는 태백산보다 약간 더 높은 함백산이라는 제일 높은 산이 있다. 함백산은 태백산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충분히 크고 멋있는 산이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태백산보다 함백산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영산의 지위를 내 주었는 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함백산 입장에서는 조금은 아쉬울 법도 하겠다. 높은 것은 태백산보다 더 높은데, 태백시라는 지명도 내 주고, 영산의 지위도 내 주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두 거산은 그러한 의문에 초연한 채, 사이 좋게 나란히 맞닿아 있다. 마치, 애초부터 한 산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태백산, 함백산, 소백산, 이 세 산의 공통점은, 이름에 백이 들어 간다는 것이다. 태는 클 태 자, 함은 본디 크다는 의미의 한강의 한 자의 발음과 유사하게 변형이 된 듯 하다. 소백산은 이 두 산보다 버금간다는 의미에서 소 자를 붙인 듯 하다. 그렇다면 백은 무엇인가. 흰 백 자를 쓰는데, 하얗다는 표면적인 의미보다는, 아주 환하고 밝다는 뜻으로 전승되고 있다. 밝다고 할 적의 밝 자가 한자의 백으로 변형된 것이 보여 진다. 이 해석이 맞다면, 엄청나게 크고 환한 산. 이를 명명한 이들은 대체 이 산들의 어떤 면을 보았던 것일까? 한 겨울의 설경 때문에 하얀 것이라면, 그 것은 어느 산이나 다 마찬가지일 테고, 백두대간의 정점에서 남서로 방향을 튼 지리적 배경에서 기인한, 민족 신화적인 의미가 있을 거라 미뤄 본다. 외에도 바람의 언덕으로 유명한 매봉산, 태백시 정중앙을 차지한 연화산, 백병산, 면산, 삼방산, 태백시 어디를 가도 사방이 산천지이다. 게다가, 죄다 해발 1000 메터는 우습지도 않게 넘어 가는 산들이다. 이렇게 산천지이니, 제대로 된 마을 군락이 형성될 수가 없었고, 길 또한 산과 산 사이 골을 따라 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강남처럼 일자로 질러 가는 길은 어림없고, 산골따라 구불길이다. 터널이라고 해 봐야 장성터널, 태백터널, 연화터널이 전부이다. 아까 언급한 대로, 연화산이 태백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길 또한 연화산을 감싸는 형태로 돌고 있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태백역에서 철암역까지 직선 거리로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통리를 거쳐 가든, 장성을 거쳐 가든, 어느 쪽으로든 우회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태백시의 시내 버스는 같은 노선임에도 통리를 거쳐 철암, 장성으로 도는 버스, 반대로, 장성을 거쳐 철암, 통리로 도는 버스가 따로 있다. 다른 지역에서 보기 드문 지형 탓이다. 


광역 교통은, 태백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도 부재하고, 31번, 38번 국도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태백 시외버스 터미널이 강원도, 경북을 주노선으로 해서 수도권까지 다양한 노선을 운행하고, 기차로는 강릉과 청량리 사이를 오가는 노선이 태백역을 관통, 강릉과 대구, 부산을 경유하는 노선이 동백산역, 철암역을 관통한다. 태백이 강원 남 쪽 끝에 위치한 외진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는 석탄 산업 부흥과 함께 필연적으로 교통 기반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고속 KTX가 아닌, 완행 무궁화호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강원도 군소 도시로써는 주변 도시와 비교했을 적에 상당히 괜찮은 교통 인프라이다.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위치적으로는 태백이 서울과 대구 사이의 정중앙 즈음에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갔을 경우, 동해 바다까지 닿을 수 있다. 태백 가까이의 인접한 대도시는 없으며, 그나마 강원도에서 최대 도시인 원주까지 2 시간, 그보다는 규모가 작고, 주요 광역 환승지인 제천까지는 1 시간 반 남짓, 대도시인 대구나 서울까지는 3 시간 반 정도를 잡아야 한다. 대도시를 자주 왕래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불리한 점이 있다. 태백시에 정착하려면, 기본적인 것은 태백시나, 인접한 보다 큰 도시에서 충당할 수 있어야 하겠다. 


태백시 내의 각 동의 특징에 대해 알아 보자. 우선, 태백시에서 터미널과 태백역, 시청, 온갖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황지동이 눈에 띌 것이다. 황지동은 황지 연못에서 따 온 지명으로, 태백시 북서 쪽에 위치한 핵심 지역이다. 실질적으로 태백 시민들은 어느 동네이던, 이 황지동에서 장을 보고, 일을 보는 일이 많다. 재래 시장인 황지 자유시장, 시중 은행, 우체국, 관청등이 밀집해 있는 것이, 전형적인 시골 읍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의외로 다른 시골과 달리, 제법 신식 건물과 상점들이 눈에 띈다. 오래 되고 낙후한 점포나 건물이 없지는 않으나, 많지는 않다. 황지동 내에는 그나마 평지가 있어서 주택 밀집지역이 크지는 않아도 형태는 갖추고 있다. 전형적인 시골집의 형태와, 그보다 현대적인 주택들이 혼재해 있으며, 아파트 단지나 연립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의 부흥했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해 온,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황지동은 그 흔한 논밭이나, 축사 등,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은 아예 찾아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평지가 부족한 태백에서, 더군다나 고원이라 논 농사는 아예 불가하며, 밭 또한 지을 여유 또한 없는 탓이다. 그 때문에, 주택이 촘촘히 모여 있기는 해도, 시골 마을 특유의 농경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집단성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알고 지내는 이웃 정도로 유대를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지동에 인접한 삼수동, 상장동 또한 황지동의 연장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주민들의 구성도 토착 원주민이 많은 것 같지도 않다. 2~30 년을 거주했다고 해도, 과거 타지에서 살다가 광산에 취업해서 정착하게 된 주민이나, 비교적 최근에 아파트로 이주한 사람들이 혼재하는 것으로 짐작됐다. 태백의 아파트는 그다지 비싸지 않아, 수도권보다 현저히 저렴하게 아파트를 살 수 있으며, 평상 시에 수도권에 살다가 휴양을 목적으로 별도로 구매한 사람들도 몇 몇 있는 것 같다. 


황지동에서 정동으로 10 분 정도 가면, 통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통리는 삼척 도계로 건너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다. 이 통리는 연립 주택 단지 몇 군데 있고, 주택도 150 채 남짓 안 되는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통리역은 동백산역에게 정차역을 내 주고 폐역이 되어 자리만 남았고, 식당 몇 군데 빼고는 전부인 곳이다. 주변에 자랑할 만 한 관광 명소라던가, 내세울 만 한 게 없는 평범한 마을이다.


황지동에서 남 쪽으로 내려 가면 장성동이 있다. 이 곳은 석탄 산업 부흥기의 장성광업소를 출퇴근하는 광부들이 마을 통 채로 살았던 동네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개인 주택들이 많이 없고, 죄다 연립이거나, 최근에 신축된 아파트가 조금 보인다. 그 연립 주택 단지들이 과거에 광부들이 살았던 곳으로, 광부가 아닌 토착민이 과연 몇이나 될 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즉, 장성동은 광부들의 기숙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탄광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그 떄 정착했던 자들이나, 아직 소수 현역으로 광부를 하고 있는 이들이 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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