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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태백의 지세 3

2020-12-30 17:50:55

황지동에서 남동 쪽으로 쭉 남하하면 철암동이 있다. 

철암동은 과거 석탄 산업 부흥기 때 가장 호재를 누리던, 광산 개발의 메카였다. 

지나 가던 개도 지폐를 물고 돌아 다닌다던 말도, 광부 월급이 대졸 출신보다 곱절 높아서, 당시에 좋은 신랑감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는 말도, 이 철암동을 빼 놓고 얘기가 안 된다. 

한창 대한민국이 고도의 급성장을 이루던 시기, 그 화려했던 산업의 전성기를 태백, 그 것도 이 철암동에서 온전히 다 누렸다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철암동에게 있어 석탄, 그 것과 동고동락한 애환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제법 큰 규모의 역사 건물을 보여 주는 철암역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소수의 여객만 타고 내리는 한산한 기차역이지만, 한창 캐낸 탄을 가득 싣고 분주했을 철암역을 상상하노라면, 그 정도 규모의 철암역도 좁았을 지도 모른다. 

철암역의 뒷 편을 배경으로 선탄장이 보이고, 철암역 바로 앞에는, 그 때 당시를 보존해 놓은 상가 건물, 철암탄광 역사촌이 보인다. 

그 때 당시의 광부들의 고된 일상과 생활상을 전승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작은 기념관인 것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학력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전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낯선 철암동에 정착했다. 

그 중에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폐병과 싸우며 세월을 보내는 광부들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철암동에 정착해 사는 어르신들은 이에 대해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철암동 현지 광부 출신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눠 보지는 않고 늘상 지나 치기만 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느낌이 그랬다. 

그 때 번성했던 마을의 흔적으로, 철암동은 작은 규모의 마을은 아니지만, 딱히 발전의 기미도 없이 정체한 모습이다. 

석탄 산업이 쇠락하자, 많은 광부들이 자연스레 마을을 떠나 가고, 지금은 오롯이 난 철길을 따라 지어진 소박한 시골집들이 말없이 철암동의 쓸쓸함과 함께 했다. 

그 철길 주변에 늘어 선 집들은, 과거에 그 석탄을 가득 싣고 희망에 찼던, 그 철길을 따라 과거로 돌아 가고 팠나 보다.


마을을 벗어난 나머지는, 골과 대로변을 따라 드문드문 가구들이 소규모로 산재해 있다. 

이렇게 산재한 주택 주변에는 그나마 밭, 축사를 볼 수 있어,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다. 

태백 특유의 산지형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옛날에야 건축술이 발전하지 못 해서 그렇다 쳐도, 요즘은 산 비탈을 깎아서 어느 정도 마을을 만들 수도 있지만, 유입하고자 하는 인구가 적고, 도리어 점점 인구가 빠져 나가는 상황이라, 이러한 개발도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 

태백시 주민들 대부분이 황지동, 상장동을 중심으로 태백시 내에서 내수 활동을 하고 있고, 더 이상 석탄 산업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생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 축업이 발달되기가 어렵고, 그나마 태백에서 자랑할 만 한 특산품이 배추인데, 영월 방면 혈리에서 밭이 꽤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한 철만 바짝 파종하고 수확할 때만 인력을 확충할 뿐, 생업으로 종사한다고 봐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태백시가 특정 관광업, 산업, 농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내수 시장으로 경제가 운영된다고 보여 진다. 

아까 설명한 태백의 지리적 위치와 교통과 무관하지 않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들의 특징은, 각 지방마다의 대도시가 있고, 그 주변의 발전이 많이 미진한 도시는, 대도시의 인프라를 이용하기 위해 왕래해야 하는 생활권으로 굳어 지게 돼 있다. 


하지만, 태백시는 자생적인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잘 짜여진 곳이라 해도 무방하다. 

태백 주민이, 원주나 삼척, 제천으로 생업이나 장을 보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태백은 그 반대이다. 

태백 경계에 인접한 타 도시의 마을들이 도리어 태백으로 흡수가 되는 형국이다. 

그 대표적인 마을들이 영월 상동읍, 봉화 석포면, 삼척 도계읍, 정선 사북읍, 고한읍 등이다. 

이 마을들은 자급자족에 한계가 있어서, 태백의 생활권에 의존해야 한다. 

특히, 상동읍과 석포면 주민들은 실질적으로 태백 생활권에 속한 것으로 봐야 할 정도로, 생활권이 소속 읍내와 너무 멀고, 발전도 미진한 곳이다. 

비록 태백시가 지방 소도시이지만, 과거 석탄 산업 호황과 천혜의 관광의 영향으로 교통과 도시 발전이 주변 도시에 비해 그나마 나은 곳이다. 


태백은 이제 석탄 산업의 도시라는 간판을 내리고 대신, 관광 도시라는 점을 내세워서 발전을 도모 중이다. 

대표적인 국립공원인 태백산과 함백산을 중심으로, 오투 리조트, 365 세이프 타운, 태백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 태백 석탄 박물관, 매봉산 바람의 언덕, 태백 고원 자연휴양림, 용연동굴, 검룡소 등, 태백시가 관광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많이 개발을 도모했다. 

이제는 엄연히 천혜의 기후와 지리를 내세워, 휴양과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 좋은 곳이라 내세워도 될 정도이다. 

다만, 고속도로가 직접 닿지 않고, 기차 또한 완행이라 접근성이 다소 불리한 점이 있지만, 관광 도시로써 더욱 발전하고 인구가 유입이 되면, 그에 따라 교통 인프라 또한 보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아득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 


태백 주민의 분류를 대략 나누어 보면, 소득적으로 여타 다른 이웃 도시보다 나은 것으로 보인다. 

태백에 아파트가 적지 않다. 

물론, 전형적인 시골집에 사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연령 대로 봤을때, 여타 다른 시골이 노인층이 많다면, 태백은 다행히도 다양한 연령층이 존재한다. 

태백 내에 대학교는 유일하게 강원관광대 뿐이지만, 초, 중, 고등학교가 각 동마다 두루 산재해 있다. 

지방치고는 기초 학군이 나쁘지 않아, 젊은 세대들도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기 좋다. 

뿐만 아니라, 행정 구역 상 정선에 속하지만, 태백시 가까이에 강원랜드가 있어서, 이 곳을 출퇴근하는 젊은 직원들이 태백에 유입이 된다. 

그리고, 아까 황지동에 대해 얘기하다 언급한 건데, 태백에서 대를 이어 유지한 토착민은 드문 것으로 안다. 

태백에 오래 살았다는 어르신들도 대부분, 전국 각지에서 광부가 되려고 태백에 정착해서 동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태백시 인구가 호황기 때 12만이 넘었는데, 지금은 4만5000 남짓 조금 안 된다. 

석탄 산업이 하향세를 그리자, 이 곳에 정착할 의미를 못 느낀 이주민들은 전부 태백을 이탈했다. 

그 때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지금보다 적었을 때이기 때문인데다, 발전도 제대로 되지 않은 강원도 소도시에 12만이라는 인구는, 엄청난 인구였음을 미뤄 볼 수 있다. 


언어적으로 접근했을 때, 태백의 사투리는 강원 영동의 사투리와 경북 사투리가 혼합된 늬앙스이다. 

인근의 영월, 정선, 삼척과 유사하고, 경북 봉화군 석포면 주민들과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 

산골이기는 해도, 비슷한 지형과 기후, 정서의 인접 주민들과 교류가 꾸준히 이루어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광복 후 대한민국의 폭발적인 성장기의 한 복판에 전성기를 누렸던 태백. 

국가의 성장과 맞물려 많은 석탄 자원을 공급하므로써, 가가호호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로 마을을 훈훈하게 덮혀 주었고, 일상을 마치고 집에 들어 서면, 훈훈한 난로 연기가 추위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었다. 

또, 학교에서는 연탄 난로 주변을 서로 차지하려는 또래들과의 아웅다웅하던 추억을 선사했다. 

난로 위에 고구마, 도시락, 떡을 구워서 따뜻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연탄 덕 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시절, 장 당 200~300 원 남짓 하던 연탄으로 한 겨울을 큰 부담없이 나게 했던 것도, 제대로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막장에서 가족들의 미소를 떠 올리며, 몸이 으스러 져라 탄을 캐야 했던 광부들의 노고로 일군 것이다. 

국가 산업에 두루 쓰이는 연료인 석탄으로 말미암아, 6.25 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 오늘 날의 찬란한 대한민국으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꽃이 깊이 뿌리를 내린 땅 깊숙한 곳 어딘가에,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이들이, 언제 사고로 이 한 몸 묻혀야 할 지도 모른 채, 묵묵히 탄가루와 땀 범벅이 된 이마를 쓸어 가며 불빛도 제대로 들어 오지 않는 어두운 막장 어딘가에 있었다. 

변방의 오지에서 산업 자원의 주요 도시로써 번영을 누렸던 태백은, 아직도 과거의 그늘에서 마저 벗어 나지 못 하고 서서히 원동력을 잃어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제는 태백 시민과 지역 정치인들이 과거 호시절의 미련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원동력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과,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 땅이라는 천혜의 명당을 잘 활용한다면, 태백은 분명히 석탄 산업 호황 때보더 더욱 번창하리라 확신한다. 

태백시를 한 지방 도시에 국한해서 보면 쇠퇴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오늘 날, 아시아 최빈국에서 우뚝 솟은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위상을 보면, 태백시는 그 이름답게 크게 빛이 난다. 

강원도 소도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발전의 표상과 민족의 종가로 거듭나는 태백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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