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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평창동의 지세 1

2020-12-30 18:21:21

평창동이란 지명의 유래는, 구한말의 신식군, 별기군의 군량 창고에서 유래되었으며, 가난한 서민들이나 북한산에 기도를 하던 무속인, 도인들이 한 데 뒤섞여 살던 산골짜기 마을이었다. 

평창동이 오늘 날의 전통적인 부촌으로 개발이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김신조 남파 간첩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다. 

평창동은 지리적으로 청와대가 가깝고, 북한산 자락에 올라 청와대 배후를 노려 보는 자리였다. 

당연히 은밀하게 침투하기 좋은 지리적 조건이었다. 

그 사건 후에 경각심을 느낀 청와대는, 평창동을 일거에 개발하도록 추진한다. 


위치적으로는 서울 한 복판이지만, 북한산이 곳곳에 둘러친 외진 곳에다, 워낙 지대가 높고 가팔라서 오르기 쉽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도 많이 보급이 안 되던 시기였다. 

교통과 접근성이 좋지 않아, 처음에는 평창동에 저렴한 집들이 많았다. 

그러나, 평창동은 지속된 개발과 발전을 이루었고, 1971 년에 북악 터널, 1986 년에 자하문 터널이 개통되면서 접근성도 좋아 졌다. 

그와 함께 서울의 심장이었던 종로, 중구 시내에 활동하던 여러 기업인 총수, 고위 정치인들이 자연스레 평창동으로 유입이 되기 시작했다. 

오늘 날의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평창동의 모습은, 이 고위층들이 단독 주택을 지어 살면서 이룩된 것이다. 

터널이 뚫리자, 광화문과 불과 15 분 거리면 도달할 수 있고, 고위층 특유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단절하면서도 수려한 북한산 경관을 즐길 수 있고, 엄연한 서울이면서도 도심의 각박함을 피해 한적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평창동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 또 거기서 가까운 평창동이었지만, 가파른 북한산 산세에 막혀 개발이 되지 않은, 마치 등잔 바로 밑과 같은 곳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 대대적인 개발로, 오늘 날 부촌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기후부터 살펴 보자면 참 재미있는 곳이다. 

어차피 서울 강북의 한 동네일 뿐인데, 기후를 볼 게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광화문 방면에서 자하문 터널을 지나, 세검정 삼거리에만 들어 서도 서울 시내와 기온이 3~4도 차이가 난다. 

평균 기온이 더 다는 뜻이다. 

평창동과 이 일대의 구기동, 신영동, 부암동, 홍지동, 다 비슷하다. 

같은 부촌인 강남과 명확히 다른 것이, 이 북한산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강남은 너른한 뜰이 온전히 펼쳐진 평지 복판이라서 개발도 쉽고, 발전이 빨리 될 수 있었다. 

규칙적인 바둑판 식 도로와 빌딩, 아파트 단지도 그래서 생겨 난 것이었다. 

반면, 평창동을 비롯한 세검정 일대는, 사산이 둘러 싼, 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개발을 해도, 산을 중심으로, 산을 염두해서 길을 내고, 집도 들어 서야 했다. 

과거의 선조들은 개발을 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 인력이 한계가 있으므로, 이 산에 막혀서 세검정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지만, 개발이 된 지금은, 태초의 사산이 주는 수려함과 쾌적함은, 세검정 일대 주민만이 누릴 수 있는 천혜인 것이다. 


넓게 보자면, 세검정 일대가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에 둘러 싸인 형국이며, 그 중에 평창동은 주산인 북한산을 중심으로, 좌로는 형제봉 기슭, 우로는 보현봉 자락, 전면에는 형제봉에서 발원한 북악산 스카이 웨이 자락이 쭈욱 늘어 서서, 북악산 백봉으로 마무리 된다. 

마치, 북한산이 평창동을 뒤에서 양 팔을 크게 벌려 감싸 안은 형국이다. 

고전적인 풍수지리 론으로 따지면, 명당의 조건이다. 

꼭, 명당의 모든 조건이 이러한 사산이 뚜렷해야 하는 것으로 일관할 수는 없지만, 평창동은 현대적 의미의 풍수지리 론으로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지세이다. 

고로, 이 사산에 완연히 둘러 싸인 형국이 마치, 오목한 그릇 안에 갇힌 형태와 같으며, 일종의 작은 분지 지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단절된 산악 지형은 강원도를 비롯하여, 전국, 전 세계의 어디에도 많으며, 공통점은, 고립된 지형 탓에 외부의 문화와 교류, 발전을 할 수가 없었고, 독자적인 문화와 생활상을 계승하며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창동은 예외이다. 

고립이 된 지역 사회가 교통의 발달로 외부와 서서히 융화를 이뤄 가는 반면, 평창동은 도리어 개발을 한 후에 형성된 신생 마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 강북의 조용한 부촌, 그 외의 독특한 정서, 문화적 특이점은 없다.


평창동을 품어 안은 북한산의 자연적인 산세를 한 번 보도록 하자. 

비록 크지는 않지만, 보현봉 자락 평창 계곡에서 발원한 개천이, 평창동 대로변을 따라 홍제천으로 합류한다. 

도심화가 많이 된 서울에서, 이런 자연 개천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여유와 운치를 더한다. 

산의 지세가 북한산답게 남성적이고 멋스럽다. 

산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북한산은 흙과 바위가 골고루 어우러졌으나, 아무래도 내 견해로는 골산에 더 가까운 듯 싶다. 

평창동의 지세를 한 눈에 파악하기 쉬운 곳이, 마주하고 있는 스카이웨이 정상의 팔각정이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지세, 거기에 자리한 평창동은, 포근한 느낌보다는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경사진 산자락에 마치, 층층이 계단처럼 지어진 고급 주택들은, 누가 돈을 많이 들인 집보다는, 누구 집이 멋스럽고 개성있는가를 다투는 듯 하다. 

이렇게 경사진 산자락에 지어진 집들은, 탁 트인 경관으로 개방감을 느낄 수 있으며, 향 또한 남향을 바라 보고 있으니, 양명함을 더한다. 


단, 전면의 해발 300 메터가 넘는 스카이웨이가 완연히 막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안산과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가 않고, 높이 또한 내가 자리한 자리보다 높다면, 이는 여기에 사는 이가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장, 단점이 갈린다. 

앞에 무엇도 막히지 않은 탁 트인 개방감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이 스카이웨이 안산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평창동에서 가장 고지대로 들어선 이들에게는 한결 덜 하겠지만 말이다. 

안산과 거리가 멀거나, 야트막한 산을 이상적인 풍수지리 명당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평창동은 그렇지 않다. 

마치, 높은 담장을 두른 듯 한 모습이다. 

아마, 오래 살다 보면, 저 스카이웨이 안산을 들어 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안산의 형태가 수려한 것도 아니고, 일자로 쭉 늘어선 평이하고 밋밋한 형태이다. 

미적으로 멋들어진 북한산을 등지고, 정작 심심한 스카이웨이를 마주한 점에서 아쉬움이 클 것이다. 

이런 이들은 성북동에 가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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