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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평창동의 지세 2

2020-12-30 18:22:01

성북동 자체가 스카이웨이 자락에 들어 서서, 앞을 가로 막은 안산이 없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면의 탁 트인 개방감을 원하는 이들에게 평창동은 이런 면에서 반감이 된다. 

하지만, 사생활 보호를 중요시하고, 조용하면서도 복잡한 서울과 단절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스카이웨이는 아주 완벽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거리 상으로는 서울 시내에 가까우면서도, 저 스카이웨이 자락이 평창동과 종로 시내를 막아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 시내에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불과 10~15 분 거리에서 호젓한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은 평창동이 유일하다. 

물론, 세검정 일대의 다른 동네도 마찬가지이지만, 조망권으로 보나, 친자연적인 천혜를 누리기에는 평창동이 으뜸의 터이다. 


평창동이 부촌이라는 점이 강조가 되지만, 평창동의 모두가 그렇지 않다. 

재미있는 점은, 평창동의 지대의 높이에 따라 부의 척도가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에 산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무리지만, 상식적으로 금전에 여유가 있다면, 좋은 집부터 살고자 하지, 구태여 저렴한 주택에 살 이유는 없는 것이다. 

평창동에서 가장 지대가 낮은, 평창동을 가로 지르는 대로변을 기준으로 보면 알기 쉽다. 

대로변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그 이면부터 주택이 들어 서기 시작한다. 

빌라나 연립주택들이 많고, 단독주택도 있기는 하나, 고급 주택이라 보기는 어려운 감이 있다. 

이런 주택들은, 인근의 세검정 일대의 주택들과 시세가 크게 차이가 안 난다. 

평창동을 크게 세 등분으로 나누면, 3부까지 저렴한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고, 3부부터 7부까지 고급주택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평창동의 시세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7부부터 최정상에 위치한 주택들은, 필시 조망권으로 말미암아 고급주택들이 대부분이고, 시세도 중간 자리보다 더 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대로변을 기준으로 해서, 북악 스카이웨이를 등지고 있는 쪽도 살펴 보자. 

평창동을 면하고 있는 반대 쪽은, 북한산을 끼고 있는 곳만큼이나 개발이 안 돼 있다. 

스카이웨이 자락의 2부 능선 남짓 밖에 주택들이 없다. 

맞은 편 저지대처럼 저렴한 주택들이 늘어서 있고, 차이가 있다면, 대로변에 접해 있을 지라도 북악 터널 가까이는 지대가 높은데, 이 곳에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자리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높든, 저렇게 높든, 지대가 높아야 전망도 확보가 되고, 사생활 보호도 되는 땅의 가치를 정확하게 비례해서 반영한 땅이 평창동이다. 


이렇게 지대가 높은 곳에서 저렴한 주택들이 늘어선 아래를 내려다 보게 되면, 그들만의 계급 의식을 느끼고 있을런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소박한 우월감을 넘어, 청와대를 막아선 북악산 뒷 모습을 바라 보면서, 언젠가 대통령으로 등극하기 위한 자신의 모든 자금력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비밀스런 계획을 실행시키는 단 꿈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를 것이다. 

역사 속의 반정도 이 세검정 일대에서 추진되었고, 일본이 조선을 호령하기 위해 보현봉 자락에 올랐던 것처럼, 평창동에서 내려다 보는 북악산은, 면류관을 얹은 임금의 방심한 뒷 통수를 여실히 보여 준다. 

600 년 조선 왕조의 궁궐, 대한민국 정점의 권력자가 들어선 청와대. 

그 자리를 항상 뒤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야망이 큰 인물이라면,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자 평창동에 입주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고급 주택들에 살고 있는 이들이 어떤 부류들인 지, 면면을 살펴 보자. 

그들과 교류를 할 수 없어 깊은 내막을 알 수 없으므로, 피상적인 부분만 다뤄 보도록 하겠다. 

국내에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총수 및 재벌, 고위 정치인(대선 출마자도 있음), 인기 연예인, 예술, 문화계 인물 등,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공통점은, 출세를 해서 부를 이룬 자들이란 것이다. 

이 중에 몇몇 유명인들의 저택을 직접 가서 보기도 했고, 누가 사는 지도 알지만, 사생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이 외에도 각 국 대사관도 드문드문 보인다.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산다. 

아예 한옥 대궐을 지어 놓은 곳도 있고, 유명 건축 디자이너가 지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주택들도 적지 않다. 

기하학적이고 특이한 외관의 주택도 보이고, 복고적인 양옥집도 있는 등, 저마다 개성있는 주택들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보기에는 얼마든지 근사해 보이는 집도, 매매가 되어 임자가 바뀌었는데, 새 임자가 집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면, 돈과 시간이 얼마가 들던, 재건축을 하는 이도 종종 있다고 한다. 

내 집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 어차피 돈이 남아 도는 그들에게는 문제될 건 없다. 

문제라면, 마음에 안 드는 주택의 디자인일 것이다.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어느 가수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 대로 재건축을 하다가, 중간에 업자와 법적 분쟁을 겪는 문제도 있었지만, 젊은 감각의 현대적인 주택이었다. 

아마,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트렌드로 집을 짓는 주택들이 많다. 


인근 부동산에 매물로 내 놓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내가 실제로 어느 부동산 업자와 걸으면서 들은 실화이다. 

평창동에 살다가 집을 비우고 이사를 가는 경우가 있는데, 집을 오래 비울 것 같으면 월세라도 내 놓는 게 좋지 않느냐고 주인에게 권유를 해도, 월세로 세입자가 있다면, 매매로 보러 오는 사람이 불편할 것 같아서 그냥 비워둔다고 한다. 

서민들이 매매로 이사를 하더라도, 자금상의 이유로 집을 장기간 비우는 경우는 드물고, 싸게라도 월세를 놓는 생각을 하게 마련일 것이다. 

매매로 보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세입자한테 양해를 구하고 보여 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평창동 부호들에게는 월세라고 해 봐야 겨우 잔 재미 수준에 불과하고, 매매 과정에서 겪는 사소한 불편함이 더 큰 것이다. 

심지어, 집을 비우고 내 놓지도 않는 집도 있다고 한다. 

꽤 돈이 많다 수준이 아니라, 도대체 얼마가 있는 지를 모르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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