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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평창동의 지세 3

2020-12-30 18:22:26

나는 평창동을 골목골목 걸으면서 살폈는데, 나처럼 걷는 사람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왜냐? 전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거겠지만, 평창동은 대로변에 마트나 상점들이 밀집해 있고, 경사가 상당히 심하다. 

껌 하나, 담배 한 갑을 사더라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하나같이 높다란 담벽과, 위용있게 우뚝 지은 고급 주택이, 마치 그 사이를 초라하게 혼자서 걷는 내 자신을 엄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것은, 그 사이를 누비는 내 자신 만의 생각인 것이다. 

평창동에 사는 이도, 주택도, 나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을 뿐이다. 

담벽이 높기 때문에, 길에 지나 가는 사람이 집 안을 엿본다던가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사생활이 완벽히 보호가 되는 구조이며, 보안에 더 신경을 쓴 집은, 1 층 대문과 주차장에서도 계단으로 올라 가야 주택에 비로소 들어설 수 있다. 

어차피, 주택의 설계가 애초부터 타인과 차단이 목적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공간을 추구한다. 

이웃사촌이라는 우리네 마을 풍습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옆 집에 사는 사람은, 그저 거리적으로 옆 집에 사는 사람일 뿐, 어떤 교류를 하고 있지는 않는 듯 하다. 

마주 치면 인사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 정치인과 기업인, 연예인, 문화, 예술인들은 분야는 다르지만, 분명히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어쩌면, 그들만의 비밀스런 모임이 필시 있을 것으로 나는 강하게 추측해 본다. 

굳이 같은 동네라서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모를 수가 없는데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레 교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거 환경을 살펴 보자. 아까 설명했 듯, 대로변 주변에 상점과 마트들이 밀집해 있다. 

평창동 주민들은 실질적으로 여기서 기본적인 장을 다 본다. 

외에도 카페, 고급 식당, 술집, 편의점, 은행, 생활하기에는 큰 불편은 없을 정도로, 웬만한 것들은 평창동 내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어차피, 종로 시내와 거리도 멀지 않아서, 학군이나, 교통 접근성, 문화 생활, 쇼핑 등은 문제될 것이 하등 없다. 

하지만, 차가 없는 대중 교통에 있어 서는 조금은 신경을 쓸 필요성이 있다. 

세검정 일대에는 지하철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역이 종로 쪽의 경복궁 역, 은평구 쪽의 불광 역, 서대문구 쪽의 홍제 역 등이다. 

따라서, 지하철을 타든 안 타든 버스 이용은 필수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평창동에 거주하면서 종로 외에는 달리 갈 일이 많지 않고, 더군다나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은 많지가 않다. 

신분당선 개통으로 세검정에 지하철이 들어설 예정이기는 하지만, 기존 버스와 지하철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이 곳 주민들에게 큰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학군에 있어서는, 종로 시내의 좋은 학교가 얼마든지 많으므로 큰 의미는 없지만, 서울 예술고등학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고답게 음악, 미술, 무용을 수업하며, 예고 중에서는 최고의 권위로 알고 있다. 

여기서 평창동의 지세에 다시 상기해 보자. 

평창동은 산세가, 바위와 흙이 고루 조화를 이루고, 볼륨감있으면서도 장엄한 무게감까지 있다. 

이렇게 수려한 산세가 문화, 예술인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친자연적인 환경에서 여유를 가지고 창작 작업에 몰두하기도 좋다. 

이는, 평창동에 미술 갤러리와 조형미 있는 고급 주택들이 많은 까닭과 밀접하다. 

평창동에 서울 예고가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계에 명망있는 작가들이 살면서, 부모의 영향으로 자식들을 예술가로 성장시키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울 예고가 가까이 있다. 

평창동은 부호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지만, 문화, 예술인들의 좋은 활동터이기도 하다. 


정서적으로 살펴 보자. 저지대에 사는 주민들은, 평창동이라고는 하나, 부호라고 보기는 어렵고, 강북의 평범한 서민들에 가까워 보였다. 

빌라와 연립주택이 꽤 있으므로, 고지대 주민들과는 달리, 서로 유대감이 형성돼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쩌면, 평창동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어디든 갈 사람들 같았다. 

꼭 평창동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는 듯 보였다. 

반면, 고지대에 사는 부호들은 폐쇄적인 면모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창동에 살 리는 없으니까. 

이는 정치적 이념을 나타 내는 투표에서도 여실히 드러 났다. 

종로구의 여러 지역들이 좌성향 정당을 지지한 반면, 유일하게 전통적으로 우성향 정당이 강세인 곳이 평창동이다. 

시대의 변화보다는 기득권의 안정, 서민들보다는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할 거란 우성향 정당이 평창동 주민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그 것이 얼마 전에 좌성향 후보가 당선되어 깨지긴 했지만, 평창동 주민들의 보수적인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평창동의 미래향은 어떨까? 

현재의 모습에서 극적인 변화는 일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평창동은, 서울에 살면서도 마치, 속세를 떠난 듯 한 묘한 초탈함을 느끼게 한다. 

지리적으로는 빼곡한 빌딩이 들어선 서울 중심가가 거의 코 앞이고, 겨우 산 하나만 막아 섰을 뿐인데 말이다. 

명당과 부호들의 동네란 타이틀이 깊히 박힌 이상, 이러한 간판을 보고 눌로 앉으려는 이들은 꾸준히 찾아들 것이다. 

이따금씩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상점화가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가까운 삼청동이라던지, 경리단길, 북촌, 홍대, 이태원, 망리단길 등이 그런 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해서 평범한 주택가가 상점화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평창동 또한 그런 잠재적 요건을 아주 잘 갖춘 곳이다. 

고급 주택을 개조해서 식당이던, 카페던, 어떤 상점을 해도 다 할 수 있다. 

갤러리도 그래서 들어선 것 아니겠는가. 

서울 시내와 접근성도 나쁘지 않고, 서울 내에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있는 곳이 드물다. 

평창동 내에서 이미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주택도 더러 있다.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평창동도 그러한 개발의 물결을 타게 될까? 

되더라도 지극히 한정적이고, 이는 요원해 보인다. 

평창동은 도심의 복잡함을 피해 쉬면서 주거하기 좋은 터이지, 상점을 활성화하기에는 다소 아깝다. 

안 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평창동에 이미 뿌리를 내린 기득권 부호들이 그런 개발에 동참할 타당성은 없다. 

아까 언급하지 않았나, 빈 집도 내 놓지 않는 이들이라고. 그들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멀쩡한 집에 상점을 차리겠나. 

임대를 놓더라도 주거용이지, 상업용은 원치 않을 것이다. 

임대료를 받을 목적이었다면, 시내의 상가를 매입하던, 빌딩을 사던가 하지 말이다. 

도리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행여나 소란스러워질 것을 염려해서 평창동이 상점화가 될 일은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평창동은 북한산과 북악 스카이웨이라는 천혜의 품에 안긴 마을이다. 

서울 시내에 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복고적인 부촌이란 타이틀은 계속 유지할 것이다. 

높다란 담장 위에 보이는 통유리창에 쳐진 커튼처럼 비밀스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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