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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일그러진 기타 영웅, 잉베이 맘스틴

2020-12-30 19:27:47

한창 하드 록, 헤비 메탈에 미쳐 있던 내게, 잉베이 맘스틴은 단순 우상을 넘어, 영웅, 기타 神이었다.

물론, 내게 리치 블랙모어와 지미 헨드릭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잉베이가 음악적으로나, 외향적으로나 가장 화려했다.

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 린 터너 시기에는, 그마저 우상으로 받들던 리치와 지미의 아성을 넘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빠르다고 다가 아닌 것이, 잉베이가 속주 기타의 지평을 활짝 열고 나서 얼마나 많은 기타리스트와 아마추어가 잉베이처럼 빠르게, 더 따르게 치려고 안달이 났던가.

대표적으로 잉베이보다 더 빠르게 친다던 임펠리테리의 음악성은 보잘 것 없다.

유튜브에는 잉베이보다 더 빠르게 치는 아마추어들이 즐비할 것이다.

지금은 안 찾아 봐서 모르겠지만, 뻔하다.

이제, 속주 한 가닥 한다는 기타쟁이들한테 잉베이 급 핑거링은 기본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연습 많이 해서 빨리 연주한다 쳐도, 잉베이 만한 음악성을 보여 주는 이는 없다.

겨우 음악성이 비견되는 기타리스트들도 실질적으로 그를 흉내내는 아류에 가깝다.

잉베이 맘스틴은 음악성과 테크닉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대성할 수 있었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워낙 자신감이 넘치게 행동했고, 화려하고 멋진 쇼맨쉽도 빠뜨릴 수 없겠다.

또, 록 음악 내의 하위 장르인 바로크 메탈의 창시자로, 북유럽 쪽 스피디하면서도 클래시컬한 메탈을 추구하는 밴드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대로, 그의 속주와 스케일, 누런 스트라토캐스터 + 마샬, 패션, 머리 모양, 좋지 않은 성격과 행동까지 따라 하는 아류들도 제법 있다.

그만큼 잉베이의 인기는 범 대중적이라기 보다는, 아류들을 키워 낼 정도로 정말 대단했다.

개인적으로는 첫 작품과 오디세이를 꼽고 싶고, 라이브는 레닌그라드와 브라질 실황을 꼽는다.

세븐스 사인도 위 두 앨범만큼은 아니어도 괜찮은 듯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칼질을 좀 해 보자.

내가 몇 년 전에 어느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오늘 이 글을 쓰게 했다.

내용인 즉슨, 잉베이는 한 물 간 기타리스트이고, 뭐 여러 내용이 많은데 기억은 안 나고, 아무튼 잉베이는 형편없는 기타리스트라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글에 대한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은 댓글로 가득했다.

네가 뭔데 잉베이을 평가하냐는 둥, 잉베이만큼 치지도 못 하면서, 잉베이 정규 앨범이 몇 장이고, 업적이 어떻고 한데 어찌 형편없다고 볼 수 있냐는 반응들이었다.

그렇지만, 참 용기있으면서도, 안목있는 글이었다고 생각되어 진다.


난 어려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지금 잉베이 맘스틴에 대해 좋은 평을 절대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잉베이의 음악 자체를 아예 안 듣다 시피 하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록 음악을 즐겨 듣지만, 잉베이 곡에는 영 손이 안 간다.

블랙 스타, 파 비욘드 더 썬, 라이징 포스, 다 좋은 곡들이다.

한창 들을 때는 잉베이의 히트곡과 앨범을 훨씬 두루두루 많이도 들었다.

지금 시간이 흘러서 나도 나이가 들고 나니, 나 스스로 음악의 옥석이 가려 지게 되었다.

그의 연주는 정교하면서도 빠르고 화려하지만, 깊은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곡들도 다 거기서 거기이고, 그의 대표적인 속주는 빠르기만 하고, 영 건성스럽다.

솔로는 그야말로 속주 말고는 모르는 것 같다.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는 속주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여유로우면서도 감흥이 담긴 라인을 뽑아 내는가.

잉베이 앨범을 통으로 들으면, 듣고 나서 그다지 남는 게 없다.

곡마다 개성이 느껴 져야 하는데, 앨범 트랙 구성을 보지 않으면, 뭐가 무슨 곡인 지를 모르겠다.

초기작들은 그래도 들어 줄 만 한데, 90 년대 이후 앨범부터는 아예 듣는 게 고문스러울 지경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니, 그래도 뭣도 모르고 잉베이 앨범, 워 투 엔드 올 워를 통으로 몇 번이고 들은 어린 내가 장하면서도, 긍휼할 뿐이다.


이제 그런 짓 안 한다.

내가 듣고 싶은 곡들을 선택해서 듣는다.

아직도 잉베이에 묻혀서 사는 이들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묻고 싶다.

잉베이의 2000 년 ~ 2010 년대 앨범 중 한 곡을 무작위로 틀어 준다면, 그 곡 제목을 정확히 맞출 자신이 있나?

어느 앨범의 몇 번 트랙인 지.

난 아예 듣지를 않아서.

잉베이의 앨범을 통으로 듣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참 가혹한 짓이다.

가끔 잉베이가 궁금해서 새로 낸 앨범 대표곡을 들어 보았는데, 역시나 그의 곡들은 하나같이 공장 기계틀에서 찍어 낸 공산품같다.

기계가 아무런 감정없이 일정하게 찍어 내는 물건처럼.


잉베이가 그래도 잘 나갈 때 히트곡들이 제법 많아서, 앞으로 그 셋리스트로 라이브 투어를 해도 충분히 먹힐 것이다.

라이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그가 한남동에 이틀 동안 내한할 때 한 번 갔다.

내가 브라질 라이브 영상에 봤던 그 크고 수만 관중 함성으로 가득찬 무대가 아닌, 무명 인디 밴드들이나 설 법한 작고 협소한 무대에서 연출된 연기와 붉은 조명 아래 연주하고 있는 잉베이 맘스틴.

메인 보컬도 없이, 키보드를 담당하던 이름도 모를 키보디스트가 노래를 부르고, 잉베이 제외하고는 나머지 멤버들이 뭐하다 굴러 들어온 경력의 멤버들인 지 하나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티켓값도 저렴했고, 그 당시에도 잉베이에 대한 마음은 많이 떠났지만, 한국에 자주 오는 양반도 아니고, 그냥 젊을 때 추억 속 우상을 가까이서 직접 보자는 심정으로 갔었다.

그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정말 한결같았다.

어쩌면, 전성기 때 딱 은퇴했다면 엄청난 영웅으로 남았을 텐데.

이소룡처럼 말이다.

지금의 잉베이는 참으로 한심스럽게 망가진 모습이다.


그래 놓고선, 인터뷰에서는 "음악 씬이 이상하게 돌아 간다.", "가짜 음악이 판친다."는 식으로 아직도 자기 합리화와 피해 의식의 철용성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자기가 이뤄 놓은 업적과 음악 양식을 깨지 못 하고, 철저히 그 안에 고립돼서 자기 카피나 하면서 무의미한 음악을 찍어 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현대 음악가들이 특정 장르 안에서만 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 장르 안에서 탄탄한 음악성으로 평반을 내면서 롱 런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음악 영역 안에서도 퇴보하고 도태되는 잉베이는 그 상태가 훨씬 심각해 보인다.


음악 커뮤니티에 잉베이에 대해 악평을 남긴, 지금 쓰면서 생각났는데, 최초 잉베이를 비판하는 그 글을 어떤 기타리스트가 썼던 걸, 우리 네티즌이 링크를 단 것으로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참 맞게 잘 봤다.

잉베이가 요즘 잉베이는 아니지, 철저히.

대단한 기타리스트?

대단했던 기타리스트는 맞지.

그냥 직업상 마지 못 해 활동하는 거지, 음악 안에 신선함도, 열정도, 매너리즘을 탈피하고자 하는 발악의 시도 조차도 느낄 수 없다.

그런 썩은 음악을 왜 듣나.

초기작이라면 몰라도, 그 거 아니어도 들을 게 지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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