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텃밭일지
패션에 SS시즌과 FW시즌이 있다면, 텃밭에는 SS(봄여름)와 SF(여름가을) 시즌이 있다.
일 년의 텃밭 농사는 3월 말에 시작해서 11월 말쯤 마무리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 나의 텃밭 농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늦가을에 심어 겨우내 키울 수 있는 작물들도 있지만, 구청에서 분양하는 주말농장의 운영시기에 맞추다 보니 봄부터 가을까지만 농사를 짓는 것이 익숙해졌다. 겨울에는 땅도 나도 쉬는 시간으로.
봄부터 가을까지의 시간 동안 내 텃밭은 크게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감자! 봄에 심은 감자는 장마가 오기 전 하지쯤에 수확한다. 그래서 '하지 감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완전히 시기가 겹치지는 않지만 텃밭을 시작하는 시점에 모종을 심어 키웠던 엽채류들 역시 이때쯤이면 꽃 대공이 올라오면서 더 이상 수확이 어려워진다.
이 첫 번째 시기의 주요 텃밭 작물은 단연 엽채류다. 이 시기 수확한 상추들이 나의 식탁을 건강하게 채워주었다. 샐러드용으로 심어보았던 이름이 어려운 유럽 상추들은 맛있었지만 수확량이 조금 아쉬웠다. 루꼴라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자라 꽃대가 일찍 나와버리고 너무 씁쓸해져서 오래 키우지 못했다. 케일 역시 벌레들에게 거의 헌납! (맛있었니...?) 올해 처음 심어봤는데 의외로 쏠쏠했던 것이 바로 대파다! 이곳 텃밭지기 분께서 지나가면서 추천한다며 말씀해 주신 거라 모종 스무 개를 단돈 천 원에 구입해서 심었는데 여름, 가을 내내 키우며 하나씩 뽑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평소에는 조금씩 수확하고 잡초를 관리해 주고 물을 주는 정도만 하면 되지만, 첫 시즌의 끝무렵에 꼭 해주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지대 세워주기! 가지나 고추, 토마토와 같은 과채류와 깻잎, 콩류 등처럼 크게 자라는 친구들은 지지대를 세워 지탱해줘야 한다. 지지해 주지 않으면 서로 엉키거나 열매가 무거워 가지가 부러질 수 있다. 처음에 다소 과해보이는 길이로 지지대를 세워주어도, 어느새 그것이 부족해질 정도로 성큼성큼 자란다.
지지대를 세워주고 꽃대가 올라온 엽채류를 정리하고, 감자를 캐면 첫 시즌이 마무리된다. 이번에는 감자의 크기를 좀 더 키워볼까 욕심내서 수확을 여행 뒤로 미루었더니 그새 물러버린 것들도 꽤 있었다. 수확한 감자는 된장찌개에도 넣어 먹고, 조려도 먹고, 구워도 먹었다. 그리고 몇 개는 싹이 나버려서 내년의 씨감자로 활용할 예정. 이렇게 한 해의 농사는 다음 해의 농사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