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텃밭일지
몇 해 전, 관련 프로젝트를 할 때 '자연농'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자연농'은 농사를 지을 때 들어가는 인위적인 행위들(예를 들면 땅을 갈고, 풀을 뽑고,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는 등)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하지 않고 키우는 작물뿐 아니라 다른 생명(이를테면 잡초, 곤충, 새 등)이 경작지 안에서 어우리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름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땅이나 작물에 해가 되지 않는 방법을 통해 많은 수확을 얻고자 하는 유기농과 친환경 농업과도 결이 조금 다르다. 자연으로부터 착취하는 방식의 농업에 반대하며 자연과 평등하게 관계 맺고 상호작용 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방법론보다는 사상에 가깝다고 느꼈다.
양평에서 자연농을 하는 공동체 텃밭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첫눈에 들어온 텃밭은 우리에게 익숙한 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경작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면서 둘러보니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이루고 있는 생태계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작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작물이라고 표현도 이곳에서는 조금 어색하다. 물론 직접 씨앗이나 모종으로 심은 식물이 있지만, 바람에 날려 자리 잡은 잡초라고 불리던 식물 역시 이곳에서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제거할지 정할 수 있는 자격이 인간에게 있다고 너무 오랫동안 믿어온 결과를 온 세계가 함께 마주하고 있던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농사는 그 자체로 자연과 환경에 긍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일까. '자연농'이 던지는 질문들은 내게 꽤 강렬하게 다가왔고, 이후 나의 텃밭을 꾸릴 때에도 종종 떠올리게 된다.
완벽한 자연농은 아니지만 텃밭을 키울 때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은 지키려 한다.
1. 비닐멀칭을 하지 않는다. 밭에 가보면 작물 주변의 땅을 비닐로 덮어놓은 것을 '멀칭'이라고 한다. 땅에 해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할 뿐 아니라 흙의 수분이 모두 증발해서 땅이 딱딱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매우 효율적이고 간편하지만 동시에 이 역시 다 쓰레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햇빛을 많이 가리는 큰 잡초들만 뽑아 비닐을 대신하여 땅 위에 덮어둔다. 부족하면 다른 텃밭에서 뽑은 잡초들을 가져와서 사용한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멀칭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2. 제초제나 농약을 쓰지 않는다. 사실 텃밭의 규모가 크지 않아 별 고민 없이 쓰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케일 같은 것은 대부분 벌레를 먹어 거의 못 먹게 되는 경우나 여름철 여행을 다녀와서 잡초들로 숲을 이루고 있는 경우에는 잠깐 고민이 되지만, 자연에게 몫을 나눠주는 거라 생각하며 몸을 조금 더 부지런히 놀리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3.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비료는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영양물질을 통칭한다. 비료는 크게 인공적으로 만드는 화학비료(무기질비료)와 동식물의 찌꺼기를 부식시켜 만드는 유기질비료(흔히 퇴비라고도 부른다)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빠르고 많은 수확에는 화학비료가 큰 역할을 한다. 가끔 옆 텃밭에서 나의 토마토보다 2배 정도 빨리 자라는 토마토를 볼 때면 마음이 조급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냥 주어지는 대로 만족해보려 한다.
물론 타협하는 부분도 있다. 자꾸 딱딱해지는 밭이라 땅도 갈고, 작물이 아닌 것이 크게 자라면 뽑는다. 모두 자연농에서는 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자연을 착취하지 않도록,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텃밭을 가꾼다. 자연농을 꿈꾸며.
(2024년 텃밭일지를 끝내기 전에 2025년이 와버리다니... 올해의 텃밭을 시작하기 전에 부지런히 마무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