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과 아웃풋의 매트릭스
가끔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와, 저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저 정도 돈 받으면 나도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그런 사람들은 그만큼 받아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해서 잘 받게 된 거니까.
인풋과 아웃풋의 매트릭스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대학시절, 모 방송국에서 인턴을 했을 당시 첫 회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작 인턴이기는 했지만 내 인생 첫 직장이자, 첫 직장 내 회식이었기에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었다. 드라마로만 회식을 접해본 나는 머릿속으로 별의별 시뮬레이션을 다 돌렸다. 건배사를 시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만약 2차로 노래방을 가면 ‘중국에서 왔으니 중국 노래를 부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며칠 내내 연습까지 했다.
하지만 오히려 선배들이 술을 좋아하지 않아 1차 회식 후 카페에서 빙수를 먹고 헤어지는 바람에 내 연습은 쓸모가 없게 됐다. 그래도 1차에서 좋게 보였던 건지, 회식 이후로 날 챙겨주는 선배들이 많아졌다.
전 직장에 입사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중국으로 가게 되어 2주간 호텔에서 격리를 하게 됐는데, 당시 원장님은 내가 심심할 것 같다며 직접 집필하신 책을 포함해 6권의 책을 보내주셨다.
그때까지 나는 원장님을 뵌 적이 없었고, 워낙 높은 분이라는 생각에 어렵게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직접 쓰신 책이라니... 괜히 긴장이 되곤 했다. 선배들은 ‘그냥 너를 생각해서 보내신 거니까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격리 해제까지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재택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6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특히 원장님의 책은 노트북과 종이에 좋은 구절을 적어가면서 외울 정도였다.
그리고 드디어 격리 해제 날 저녁, 나를 위한 환영 회식이 열렸다. 회식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원장님이 책 내용에 대해 여쭤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책 이야기는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회식은 점점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였고, 불안해진 나는 결국 원장님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을 때, "원장님 책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라며 책의 내용을 인용하며 대답을 했다. 원장님은 정말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고, 선배들은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했다. 한 선배는 "야! 이새끼 진짜 열심히 사네! 존경한다!"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때는 왜 이런 반응인지 이해를 못 했지만, 원장님의 성격을 잘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만큼 내 행동이 웃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릴 때는, 뭐가 맞는지 뭐가 틀린 지도 잘 몰랐고, 뭐가 부끄러운지도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원장님이 물어보지도 않은 걸 내가 나서서 말한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애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오히려 그 덕에 내가 작은 부분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반면에 직장에서의 연차가 쌓이고, 익숙해질수록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더 많아졌다. 성과를 먼저 생각하면서 힘 조절을 하게 됐고, 같은 업계에서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 체면을 더 신경 쓰게 됐다. ‘원래 받은 만큼 일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이던 나를 떠올려 보면, 지금보다 철없고 모르는 게 많았지만, 적어도 인풋과 아웃풋의 매트릭스를 헷갈리지는 않았다. 어떤 경험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어떤 경험이 어떤 성과와 연결될지를 따지지 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지금은 그 시절의 나보다 신경 써야 할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아졌고, 가장 중요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 되었을 정도로 에너지를 잘 분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웃풋만을 바라보며 인풋을 아끼지는 않았는지, 정말 간절히 원하는 일에 힘을 조절한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은 힘 조절을 하면 안 될 때가 아닐까.
다시 한번 스스로의 길에서 최선을 다짐해 본다.
*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Adrian Gonzál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