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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릭아낙 Jun 23. 2016

"언젠가 당신에게 크레타섬을 꼭 보여주고 싶어"

크레타섬 여행

셰프는 크레타섬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기 때문일까. 항상 필자에게 "언젠가 당신에게 크레타섬을 꼭 보여주고 싶어"라며 수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리스에 도착하기 몇 달 전부터 크레타 행 비행기를 예약하기 위해 매일 몇 시간씩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한다. 필자와 함께 여행하는 크레타에 대한 셰프의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요즘, 한국인들이 미코노스와 산토리니 섬 이외에도 많이 찾는 곳이 바로 크레타섬이다. 크레타섬 하면 제일 먼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를 것이고, 이라클리온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을 가장 많이 찾아갈 것이다. 셰프가 없었더라면, <<그리스인 조르바>>보다 더 감동적이고, 크노소스 궁전만큼 의미 있는 곳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셰프가 그렇게도 나와 함께 오고 싶어 했던 크레타섬. 이번엔 필자가 독자분들을 초대한다.


크레타섬 지도 (출처: 구글이미지 Crete map, 2016/4/7)


크레타섬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나 페리(크루즈)를 이용한다. 필자와 셰프는 두 번 크레타 섬을 여행했는데, 첫 번째 여행 때는 비행기를, 두 번째 여행 때는 페리를 이용했다. 비행기의 경우 되도록 일정보다 빨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셰프와 필자는 한 달 전에 예약하여 1인 왕복 항공 티켓을 4만원(2인 총 8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계획만 잘 세운다면 그리스 여행, 그리 비싸지 않다.


반면, 페리의 경우, 9시간 페리와 3시간 쾌속선이 있다. 두 번째 여행 때, 페리를 이용했다. 저녁 9시에 출발해 다음 날 오전 6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장장 9시간을 배 안에서 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페리 내 카페, 레스토랑, 다양한 문화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페리 이용 비용은 항공기처럼 클래스에 따라 다르다. 셰프와 필자는 (비행기식) 좌석이나 2-4인실 방을 예약하지 않았다. 대신 선상 카페에서 브라우니와 물을 구입한 후, 카페 소파에서 하선할 때까지 머무르는 방법을 택했다. 상당히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이 방법을 이용한다. 그래서 한 여름 피서철에는 발 디딜 틈도 없다. 페리가 출발하기 1-2시간 전에 미리 승선을 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크레타에 도착하면, 이라클리온 혹은 하냐에 첫 발을 딛게 된다. 그리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이라클리온과 항구가 예뻐서 유명한 도시 하냐. 바로 이 두 도시에 공항과 선착장이 위치해 있다.


필자는 두 번의 여행 모두 하냐에서 시작하였다. 셰프의 엄마의 고향 아노야 산골 마을과 아빠의 고향 무리 마을에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두 마을에서 가까운 하냐를 선택했다. 셰프가 내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곳은 아빠의 고향이었다. 이 곳에는 산을 등지고 땅속에서 솟아오른 물로만 유지되는 자연호수가 있다. 이 호수를 그렇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호수로 출발하기 전부터 벌.써. 하냐에 매료된다.


하냐는 항구가 예쁜 도시로 그리스인들 스스로도 끔찍이 아끼는 여행지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광지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찍는 곳마다 엽서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결혼을 앞둔 부부들이 이 곳에서 결혼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하냐 시내 모습. 항구로 가는 길.


역광도 멋있는 하냐 항구


아직은 고요한 하냐 항구

 

하냐 시내 입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황토색으로 물든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인가 보다. 아직 의자가 식탁 위에 엎어져 놓여있다. 이제 하냐 시내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언덕 위로 오른다. 이 곳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 길 위 만 남겼다. 여행의 여운으로 남기려고. 가끔 보이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 기억으로만 남길 때 로맨틱할 때가 있다. 내겐 하냐 언덕이 바로 그런 곳이다.


골목골목 하냐를 걷다 보면 아주 오래된 그리스 정교 교회가 나온다. 내 발길을 멈춘 곳은 성인(Agia, 그리스어로 Αγία) 카테리나(그리스어로  Αικατερίνη (Κατερίνη))를 기리는 교회. 다른 그리스 정교 교회와 다르게 소박하고 아담하지만 그래서 내 마음에 더 와 닿은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자신들의 소망을 빌었을까. 괜히 그리스 정교 바이블을 읽어본다. 아직은 알파벳만 보인다. 아직은.


그리스에서는 건물과 꽃이 하나가 된다. 특히 분홍색 꽃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도 집이 생기면, 우리 집 베란다를 예쁜 화분으로 장식해야지. 풍채 좋은 태양 아래 무엇이 더 필요하랴. 나의 정성과 사랑이면, 쑥쑥 잘 자랄 텐데.


크레타섬 주민들처럼 관광객에게 친절한 하냐의 애교덩어리 길고양이.


그리스에는 길고양이가 참 많다. 크레타섬도 예외가 아니다. 가끔 레스토랑에서 휴가를 만끽하며 식사를 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넉살 좋은 고양이 손님이 찾아와 우리의 음식을 나눠주곤 했다. 손님들이 심한 거부반응이 보이지 않으면, 인심 좋은 레스토랑 주인도 고양이를 반겨주는 편이다. 그리스인들의 마음의 풍요와 여유가 길고양이도 포용한다. 길고양이도 우리와 함께 사는 주민이니까. 그리스어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필로조-오스(φιλοζωος, 동물친구)라고 부르는데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모두 필로조-오스다. 아테네에서나 크레타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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