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교 부활절에는 소나무를 태운다?

2016년 4월 40일 성스러운 주 토요일

by 그릭아낙


사진 출처: 성지순례 사이트 http://www.proskinimata.com/pilgrimages/easter-2016/


2016년 4월 30일 그리스 정교(Greek Orthodox)의 성스러운 주 부활절 전날 토요일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에서 그리스 정교의 부활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연신 방송한다. 그리스 정교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러시아, 에티오피아(일부), 세르비아, 사이프러스(일부), 루마니아 등의 국가에서 믿는 종교이다. 각 국가의 대주교(archbishop)는 성스러운 주 토요일에 이스라엘로 향한다. 예수의 부활의 영혼을 상징하는 촛불(holy light)을 받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국으로 각자 돌아가 그리스 정교를 믿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퍼뜨린다.


마당에서 염소를 바베큐하는 모습

어느 때와 다름없이 행사는 늦은 저녁에 시작된다. 배가 고플 때쯤,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셰프의 오랜 동네 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염소고기를 바비큐로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바비큐 염소고기. 삶은 염소고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훨씬 부드럽고 찰지며 고소하기까지 하다니! 레드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씁쓸함이 남아있을 때 입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염소고기의 육즙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슬슬 취기가 오를 때쯤,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린다.


그리스정교 바이블을 읽교 계신 사제님과 신자

벌써 저녁 9. 지난밤에 갔던 같은 그리스정교 성당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지난밤과 같이 사제님과 신자들이 그리스 정교 바이블을 읽고 계신다. 필자에 귀에는 읽는다기보다 노래를 부르는 듯 들린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렸만. 이제 내 눈은 성당 내부 인테리어에 사로 잡혔다.


가톨릭 성당은 빛이 투영되는 순간 완벽한 매력을 발산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화려함에 매료된다면, 그리스 정교 성당은 바이블의 내용 중 일부를 그림으로 옮겨 놓은 벽화에 반한다. 그리스 정교 바이블에 등장하는 성인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보름달을 떼어 머리 뒤에 숨겨 놓은 듯 그려 놓았다.


어린아이들이 초를 들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를 둔 아이들은 엄마가 직접 만든 초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아테네의 한 서점에서 예쁘게 장식된 꾸며진 초를 본 적이 있다. 왜 서점에서 초를 팔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부활절 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점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 지역의 다양한 상점에서 초를 판다. 필자도 하나 구매하려던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인심 좋은 셰프의 둘째 이모가 초 하나를 선물(오른쪽 사진)로 주셨다. 맘에 쏙 드는 초이다. '근데 언제쯤 이 초에 불을 켤 수 있는 거지?'하는 찰나 갑자기 성당에 어둠이 덮쳤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희망의 촛불이 등장했다. 이 촛불을 통해 아노야 산골 마을의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의 축복이 전달된다. 저 멀리 한국에서 온 그릭아낙의 초에도 드디어 불이 밝혀졌다. 비록 그리스 정교 신자는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함께 동화되어 예수의 부활을 축하해본다.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희망의 촛불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다.


그리스 정교 성당 앞에서 초를 들고 있는 그릭아낙


초를 들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아노야 산골 마을 사람들. 그들을 따라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폭을 살피며 따라나선다. 멀리서 불길이 솟아오른다. 무엇을 태우는 걸까?


드디어 성스러운 주 금요일 내내 청년들이 실어 나르던 소나무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때쯤 고개를 들었다. 건물 1층 높이의 소나무가 타고 있다. 화염 속 사람의 형상이 눈에 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Judas)를 인형으로 형상화해 함께 때우고 있었다. 유다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는 크레타인들의 방식이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의 직설적인 성격이 만들어낸 퍼포먼스가 아닐까 싶다.


유타의 형상을 함께 태우는 소나무와 함께 사진을 남기는 아노야 산골 마을 사람들


엄청난 소나무의 양이 아노야 산골마을의 네 곳에서 태워지고 있다. 필자가 서 있던 장소에서 보이는 소나무를 태우는 또 다른 장소가 카메라에 잡혔다. 얼마나 양이 방대한지 다음날 아침까지 소나무를 태우는 열기가 온 마을에 남아 있었다.


그리스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그리스 정교의 부활절이 끝났다. 앞으로 필자에겐 설날이나 추석을 대신해 쇠게 될 명절. 내년에 맞이 할 땐 그리스 정교 바이블도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리스어 실력을 갖춰야지. 그럼 아직은 낯선 그리스의 명절이 덜 낯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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