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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섬에서 보낸 그리스 정교 부활절

2016년 4월 29일 성스러운 주 금요일

by 그릭아낙

그리스의 부활절은 보통 4월 마지막 주에 시작된다. 부활절 주를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주'(그리스어-μεγαλη εβδομαδα 메갈리 에브도마다, 영어-holy week)라고 부른다. 그리고 '성스러운 주'의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을 Big Monday, Big Tueseday...... Big Saturday and Sunday of Pasha라고 부른다. 올해는 Big Monday가 2016년 4월 25일이었고, 2016년 5월 1일 일요일이 그리스 정교 부활절이었다.


그리스 정교 부활절은 일요일 당일이 아닌 '성스러운 주' 금요일부터 시작된다. 필자와 셰프는 그리스 정교 부활절 Big Friday와 Big Saturday를 셰프의 어머니 고향 크레타의 아노야(Ανωγεια, Αnogeia - 높은 땅) 마을에서 보내고 왔다.


시엄마는 4남매를 두었다. 그래서 셰프에게는 삼촌(바실리스), 둘째 이모(디모크라티아), 그리고 막내 이모(헬레니)가 있다. 아노야는 3,0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다. 그리고 이 곳에 셰프의 둘째 이모와 삼촌이 살고 있다.


둘째 이모가 내 주신 삶은 염소 고기.


셰프와 나는 성스러운 주 금요일(Big Friday) 이른 오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둘째 이모는 그리스 부활절에 빠질 수 없는 음식, 염소고기를 내주신다. 한국에서 수없이 즐겨보던 "나의 그리스식 웨딩(My fat Greek wedding 1)"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그리스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영화로, 그리스인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영화이다. 영화 내용 중 여주인공의 결혼식을 위해 여주인공의 엄마가 염소고기를 주문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리스의 결혼식에서도 염소소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염소고기의 조리법은 다양하다. 한국의 삼계탕처럼 푹 삶기도 하고, 오븐에 오랫동안 굽기도 하며, 바비큐를 해 먹기도 한다. 이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그리스 정교 부활절 내내 염소고기를 질리지 않게 먹는다. 물론, 부활절 40일 전부터 고기, 생선, 유제품을 먹지 않는 '단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신앙심이 깊은 그리스인의 경우 철저하게 지킨다. 셰프와 필자는 어떻게 40일을 고기, 생선, 유제품을 안 먹고 지낼 수 있느냐며 깊은 탄식을 내지르며 둘째 이모가 내 주신 염소고기를 맛있게 뜯어먹는다.


삶은 염소고기의 맛은 장조림 하기 전의 소고기 맛과 비슷했다. 염소고기인지 모르고 먹으면 소고기가 아닐까 했을 것 같다. 삶은 염소 고기를 끝내고 난 뒤 문제가 발생했다. 삼계탕의 닭고기를 다 먹고 나면 닭죽을 쑤는 것처럼 염소 죽을 끓여 내주셨다. 닭죽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한국음식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염소 죽을 한입 입에 넣는 순간! 염소 죽은 뭔가 밍밍하고 기름기가 많아 필자가 먹기에는 다소 거북했다. 공손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셰프와 나는 자리를 뜬다.


식사 후, 셰프의 삼촌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둘째 이모 집에서 5분 거리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삼촌댁은 이층으로 지어진 단독 주택으로 일층은 셰프의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사셨던 곳이다. 비교적 그대로 보존해둔 크레타식 주택을 구경하는데 의미가 있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염소인지 양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가죽이 벗겨진 동물이 방 문에 걸려 있었다.


성스러운 주 내내 그리스인들의 주식이 될 가죽벗은 염소

그리스에서는 양과 염소를 키우는 양치기, 염소 치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키우는 양이나 염소를 특별한 날을 위해 식용으로 이용하는데 전 과정을 가정집에서 직접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죽을 벗은 양 혹은 염소를 그리스 가정집 주방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스인들에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냉장고에 보관한 염소 살코기


Big Saturday 저녁에 사용하게 될 소나무를 싣고가는 트럭

놀라운 광경을 뒤로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트럭에 소나무를 싣고 가는 트럭을 하루에 몇 번씩 만날 수 있다. 소나무의 용도는 예수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절 전날인 성스러운 주 토요일(Big Saturday) 밤에 알 수 있다.


성스러운 주 금요일(Big Friday)에는 늦은 저녁 무렵부터 교회에 모여 목사와 함께 그리스 정교 바이블을 읽는다. 방대한 양이다 보니 음을 늘려 읽는데,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이 식이 끝나면, 죽은 예수를 태운 마차와 십자가를 따라 마을 사람들이 마을 한 바퀴를 돈다. 몸이 불편하거나 어떠한 이유로 교회에 나오지 못한 신자들과 함께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해서다.


가까이서 본 마차는 꽃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가 수놓아진 작은 예수의 그림이 죽은 예수의 몸을 대신하고 있다.


마차와 십자가를 따라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집 앞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있다. 거동이 어려워 집 밖에서 슬픔을 함께 하는 할머니도 보인다.


어떤 신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뿌리고 있다. 셰프에게 물으니 잘 모른단다. 그래서 아노야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엄마에게 물었는데 18살 때 고향을 떠나셨기에 흐릿한 기억에 시엄마도 무엇인지 잘 모르시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시골에서만 행해지는 관습인 것 같다.


아노야 마을의 다른 교회에서도 이웃을 돌고 있다. 이렇게 성스러운 주 금요일 밤은 다 함께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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