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 매일 한편씩
엄마 :
미야에게
어제 식당에서 막 점심을 먹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날씨가 왜 이렇노, 별일 없나?"
"그래, 별일없이 잘 지낸다. 니도 별일 없제?"
짧은 통화가 아쉬웠는지 오늘 아침 생강 밭에서 일하면서 네 생각을 했어.
올해 하우스에는 처음으로 생강을 심었어. 봄에 따뜻한 곳에서 싹을 틔워 심어도 싹이 올라오는데 참 오래 걸린다. 봄 추위에 얼어 버린건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강 싹나기 기다리다가 목빠진다'고 우스게 소리들을 할 때쯤 바늘처럼 뾰족하게 생긴 첫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지금은 줄기가 높이 자란 것은 천정에 닿을 것처럼 크고, 뒤늦게 올라온 키 작은 줄기들도 열심히 자라려고 애쓰고 있다.
줄기가 커가면서 종자로 심은 것들이 땅 위로 솟아 올라와있는 경우가 많아. 싹이 올라올 때 땅이 흔들리고 바람, 비로 흙이 쓸려내려가기도 하거든. 이 맘 때 해줘야하는게 주변 풀메기와 북주기야. 두둑이나 이랑 아래쪽에 있는 흙을 올려 더 높게 덮어 주는 거야. 그래야 뿌리를 잘 내리고 줄기도 흔들리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지.
'북돋아준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거라는 걸 농사를 지으며 알게 됐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니. 북주기.
줄기 주변에 풀도 뽑아주고 북을 주는 동안 생강 향이 났어. 김치담을 때 생강은 강하고 매운 향이 나는데 지금은 은은하고 여린 향기가 나는 걸 너도 같이 맡아보면 좋겠구나.
"울산으로 다시 가기로 했어"
네가 다시 낮아진 목소리로 전화로 얘기했을 때 정신나간 것처럼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보니 소식이 끊어진지 거의 십년 만에 네 전화를 받았어.
"시골갔다는 소식 들었어. 한번 갈께. 주소 좀 알려줘"
바로 다음 날 밤 수확 시기라 산에서 일하고 있는데 마을 근처에 도착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그렇게 잠시 얼굴만 보고 가더니 30분 거리인 인접한 군에 빈 집이 있어 바로 이사하기로 했다고 했지.
네 이삿짐 같이 옮기면서 얼마나 신났는지 기억하니?.
고 3때 졸업 6개월 남겨두고 자취방을 갑자기 비워줘야해서 막막할 때, 선뜻 우리집에 같이 있자고 해 줘 짐 보따리 몇 개들고 네 집으로 들어갈 때 처럼.
갑자기 쓰러져서 의식없는 상태로 열흘이나 입원했었다는 이야기.
매일 12시가 넘어서야 마치는 가게 일, 유별난 시부모님 옆에 살면서 맏며느리 노릇, 아이가 학교에서 힘든 문제까지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한계점이 넘었던것 같다고 이사하고나서야 이야기 해 주었지. 살기 위해서 왔다고.
조금씩 안정되면서 민화도 배우고, 바느질도 배우고, 갖가지 꽃차도 만들어서 맛보여주면서 참 신나 보였어. 같이 붙어 다니며 종알거리고 날아다니던 고등학생 때 처럼 밝고 행복해보였어. 그 때 만들어 준 모시조각보는 너무 예뻐서 지금도 쓰고 있어. 손 끝으로 뭐든 잘 만들어내는 네가 부럽기도 했단다. 내 생일이라고 ' 네가 옆에 있어, 내 친구라서 참 고맙다'고 예쁜 편지지에 써 준 것도 기억이 나.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여전히 소녀같이 여리고 예민한 너를 볼 수 있어 속상하거나 안타까울 때도 있었지만 그 때 우리 참 좋았었지.
그 때 네 부부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조금만 도움주는 인연들이 많았다면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흙을 올려 꼮꼭 눌러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든든하게 북주기를 해 줄 힘이 내게 있었더라면...
이사와서 얼마 안됐고 아직 햇병아리 농부에다 직장까지 다니느라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고 혼자서 변명을 해본다. 3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닌데 왜 더 자주 만나고, 더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그렇게 갑자기 떠나게 될 줄 생각도 못했어. 먼저 내려가자 해 놓고도 적응을 못하는 네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지. 올 때처럼 또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지.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인연이 그랬나보다 생각하고 있어. 너도 많이 편해진 것 같아 보여 마음이 놓인다. 요즘도 짬짬이 바느질을 하고 한 달에 한번은 먼 길을 달려 바느질 모임에도 다녀간다는 얘기를 들으며 다행이다 싶다.
네가 제일 소중하고 너를 제일 먼저 챙겼으면 좋겠어.
부디 건강해라.
언젠가 또 갑자기 전화해 "나, 담주에 돌아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네가 내 친구라서 나는 참 좋다.
2020년 8월 12일
(1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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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
엄마의 친구.
딸은 엄마의 인생을 정말 하나도 모른다.
들었던 이야기는 많지만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 엄만 어떤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