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소원

엄마가 딸에게 매일 한편씩

by 보물 일호

엄마 :


초등학교 때 나는 키가 큰 아이였다. 입학할 때는 중간 정도였는데 2학년 때부터 제법 뒷 줄에 앉았다. 교실이 모자라서였는지 다른 학년은 두 반씩인데 2학년만 한 반으로 번호가 71번까지 있었다. 책상이 교탁 바로 앞부터 뒤쪽 게시판 앞까지 빼곡하게 있어 정말 ‘콩나물시루 교실’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교실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뒷문 금지” 규칙이 있어 앞문으로만 다니라고 한 적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뒷 줄에서 여러 애들 책상을 지나서 나가는 게 싫어 화장실도 참았다가 학교가 끝나면 집까지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마을에 학교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잠깐 낮잠이라도 자거나, 밤에도 매일 비슷한 꿈을 꾸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쿵’ 떨어지거나, 뒷산에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거나 여하튼 어디에 올라가다가 갑자기 ‘쓩~’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의 꿈들, 누구나 다 그런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엄마는 키 크는 꿈이라고 얘기해 주셨다. 그러다 6학년 때는 드디어 신체검사에서 157㎝. 어른인 여자 선생님들보다 더 크고 전교에서 남학생 한 명 빼고 제일 큰 키다리가 되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아침 조회 시간. 줄 맞춰 서 있으면 나만 쑥 올라와 눈에 띄는 것 같고, 어디 숨을 데도 없이 다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 소풍도 도시락 가방을 메고 길게 줄 서서 가면 어른들이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 .


4학년 봄소풍 날, 아침에 엄마가 싸 준 김밥을 챙겨서 2학년이던 남동생까지 데리고 학교 가는 척 내려가다가 집 옆으로 산에 올라갔다. 나무뒤에 숨어서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신나서 줄지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혹시라도 어른들 눈에 띌까봐 망을 봐가며 놀다가 김밥을 먹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줄을 보고 슬그머니 집에 들어 온 적이 있었다. 무단결석이었는데 크게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그냥 아파서 결석했나보다 하고 지나간 것 같다. 소풍가기 싫은 아이가 있을 줄은 선생님도 부모님도 몰랐을테니까.





2월 말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정월대보름날이었다. 설날이 각자 집에서 차례를 지내거나 친척들이 오고가는 행사라면, 대보름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노는 잔치였다. 각자 집에서 오곡밥을 따로 하면 아이들은 낮에는 집집마다 오곡밥을 얻으러 다니고, 달이 뜨면 빈 깡통을 긴 막대기에 철사로 묶고 석유를 조금 부어 불을 붙여 크게 원을 돌리는 위험한 불장난이 허락되는 날이었다. 어른들은 며칠 전부터 소나무, 대나무를 잘라와 빈 논에 달집을 크게 지었다. 너른 마당에 멍석을 펴고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하는 ‘동빼기’로 함성이 들리기도 하고 “금을 나갔다”“이게 어디 금이고” “저 아재는 또 고집 세운다” 아지메들까지 목소리를 높여도 되는 그런 날이었다.



어른들이 얘기하다가 한 말이었는지 귀가 쫑긋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빌고 달빛에 바늘에 실을 단 한번에 꿰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동지날에도 팥죽을 쑤어 집 앞 뒤로 뿌리면서 비는 할머니, 엄마를 보고 자라서일까. 그 말은 정말 믿을만하게 들렸다.


드디어 보름날이 되어 식구들은 모두 아랫마을로 달집 태우는 걸 보러 내려가고 집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드디어 달이 떴는지 함성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어스럼하게 어둠이 내리고 있어 더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받짇고리에서 하얀 무명실을 길게 자르고 이불호청 꿰메는 제일 큰 바늘을 손에 들고 달빛이 어느 정도 밝아졌나 본다고 마당에서 기다리다가 춥고 지루해서 방에 들어갔다가 몇 번을 왔다갔다 했다. 어느새 완전히 깜깜해졌고 달은 하늘 높은데로 떠올라 정말 환하게 비춰 불을 꺼도 세상이 다 환했다. 이제 됐다. 바로 지금이다. 달을 보면서 엄마가 하던 것처럼 가슴 앞에 두 손바닥을 모아 비비면서 진심으로 소원을 빌었다.


“달님 달님! 제발 더 키가 안 크게 해주세요.”


커다랗고 둥근 달 속으로 실과 바늘이 향하도록 올리고 마음을 모아 실을 바늘귀로 넣었다. 우와, 성공!. 단 한번만에. 너무 좋은데 부정탈까봐 속으로만 환호성을 질렀던 것 같다.



역시 어른들 말은 맞았다.


한 가지 소원은 제대로 이루어졌다. 지금 내 키는 162㎝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꿈도 그 때부터 꾸지 않았던 것 같다. (11.4장)


-

딸 :

이번편은 너무 웃겨서 소리내서 웃었다.

엄마가 어릴적 시골의 풍경들 보름달 뜬 날 소원을 비는 어린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생생하다.





AIbEiAIAAABECKyTt9bNs7i1swEiC3ZjYXJkX3Bob3RvKigyN2EzNmNhNDVlNGQ2ZjM1OGY4ZTQ3NGNhMDllODcyZGY3NTdhOGEwMAFIeDgfevQesy83PkuEGztIG6f1Yg?sz=80



답장전달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북돋아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