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03 침묵이 건네는 말

‘말하지 않음’의 책임

by 솔래 Solae
또한 말의 책임을 알아도 ‘말하지 않음’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말을 아끼고 싶은 날들이 잦아지는 가을입니다.


곡물은 무르익고 단풍은 물들 텐데

말 많은 정경과 달리 마음은,


새삼스레 고요를 택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무수히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침묵이,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단지 무력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침묵은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상대를 향한 배려이고,

자신을 위한 회피일지도 모릅니다.


고요가 내려앉은 밤에 가장 잘 들리는 풀벌레 소리처럼,

마음을 가라앉히면 앉힐수록 더 선명해지는 말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당당히 솔직한 자신의 뜻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너무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숨 좀 쉬고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말들이 입에서 삼켜져 넘겨질 때,

문드러지는 속이 있는가 하면 편해지는 속도 있겠지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아끼다’


아낀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끼다’는 물건이나 돈, 시간 따위를 함부로 쓰지 아니하거나,

소중하게 여겨 보살피거나 위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말을 아끼는 것과 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들어야 할 누군가 앞에서의 침묵은 말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침묵을 택하게 되는 건,

말이 가진 무게와 책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덜컥 겁이 나서,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뱉으려던 말이 가시라면 삼켰을 때 속이 쓰릴테지만, 꿀이라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가시와 꿀을 결정짓는 것은 말을 하고픈 우리가 아닙니다.


보고 싶다는 말조차, 누군가에게 가시가 된다면

그 말을 삼키고선 아픈 속을 어루만질 수밖에요.


그런데 가시이든 꿀이든 말이 있다는 것은 세상 어딘가,

듣고 싶은 귀가 있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귀가 눈앞에 있는데도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 아니면 아직 닫혀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죠.


혹은 눈앞에 있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 찾게 될 귀에게,

그때는 말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홀로 또 생각에 잠겨봅니다.


침묵이 건네오는 말.


조용한 호수는 평화로워 보일지 몰라도

던져진 돌에 ‘풍덩’ 하는 소리처럼,


그 살아 있음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말의 책임을 알아도 ‘말하지 않음’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가을이 지나 또 한 번,


새로워진 풍경들의 말이 많아지면

침묵보다 더 큰 외침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침묵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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