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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Jun 18. 2017

문학청년, 작가의 꿈을 접다

현재 진행형 자서전 2

  운명적으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던, 나름 낭만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던 한 문학청년이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교 신입생 때에는 학창 시절 동안 ‘열공’한 사실이 억울해서인지, 그 반발심에 정말이지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완전히 성적을 내던지지는 못했다.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2학기까지 약 1년간은 내가 가입했던 봉사활동 동아리에 열과 성을 다 바쳤다. 봉사활동도, 연애도, 무엇이든 뜨겁게 뛰어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동아리는, 지나간 그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좋았던 만큼 서운했고, 미웠던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서 나의 직책은 ‘편집장’이었다.

사실 편집장이란 자리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1년에 한 번씩 동아리 회보를 발행할 때에만 부여되는 ‘임시직’이었다. 동시에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나는 내 이름을 넣은 동아리 회보를 찍어 내는 것으로 찬란했던 동아리 ‘YB’ 시절을 마감하고 싶었다. ‘장’ 자가 붙은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동아리 사람들에게 원고를 분배하고, 표지 디자인을 잡고, 받은 원고를 검토하고 수정하면서 몇 날 며칠을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고생이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특히 완성된 동아리 회보가 실물로 손에 들어오자, 모든 고생이 증발되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만드는 것도 재밌구나 깨닫게 해 준 기회였다. 그렇게 뿌듯했던 마지막 업적(?)을 끝으로, 나는 동아리 ‘OB’가 되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무것도 몰라도 될 것 같았던 대학교 시절의 절반이 지나가 있었다. 유예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부모님께는 졸업 전까지 등단을 하겠다며 큰소리를 뻥뻥 쳐 두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3학년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내가 소설을 쓰게 될 줄 알았다.

아니,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시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백일장에 나가기만 하면 (산문부가 없었던 경우를 제외하고) 항상 운문부가 아닌 산문부에 참가했었다. 나는 내가 긴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당연히 소설가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수필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던 와중에 국어국문학과에서는 흔치 않았던 ‘소설창작연습’이라는 강의가 3학년 1학기 때 개설되었다. 속으로 ‘올레!’를 외쳤다. 이것은 적당한 시점에 소설가가 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신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낙관적인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인생은 본디 비극적인 법,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절필’을 선언하게 되었다. 소설은 내 길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인물과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딱 그만큼을 글로 풀어내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 백일장에서 써냈던 산문, 다시 말해 ‘수필(에세이)’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나는 당시에 수필이란 장르는 모름지기 많은 것을 경험하고 겪을수록 글의 울림이 깊어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수필을 쓰기에 소위 말하는 ‘깜냥’이 안 된다고 판단했고, 일단 먹고살 길을 찾으며 연륜을 쌓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합리화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수업을 함께 들었던, 한없이 반짝거리는 원석 같은 몇몇 수강생에게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문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전공을 가진 학생도 있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신입생도 있었다. 나보다 ‘글빨’이 뛰어난 사람들은 널리고 널려 있었다. 본래 예술의 세계만큼,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는 타고난 무언가가 횡행하는 곳도 없다. 찬란히 빛나는 그들의 글 옆에서 내 글은 빛을 잃었다.

그렇게 내 꿈도 빛을 잃었다.

  내가 쓴 소설이 ‘합평’의 대상이었던 날, 나는 소설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학교에서 자취방까지 걸어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갈 곳을 잃은 막막함에 나는 한없이 두려웠다. 동시에 무엇인가를 포기한 내 모습이 낯설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에 매몰되어 있기에는 졸업이 너무나 코앞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진로 문제에 있어서도 내 취향이 확고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고민의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다. 나는 취업과 직결되지 않아 보이는 내 전공을 좋아했다. 애초에 그래서 사랑한 듯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전공을 살려서 돈을 벌고자 했으니, 남는 선택지가 몇 개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기에는, 이미 대학교 1학년 때 교직 이수를 신청했다가 떨어진 전적이 있었다. 일반 회사에 취직하자니 아무래도 문학과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편집자’라는 직업이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무슨 직업을 가지든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던 나의 바람이 조금이나마 현실화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판계에서 일하고 계시던 친척분도 결심을 굳히는 데 도움을 주셨다. 편집자를 꿈꾸던 나를 걱정하거나 말리지 않고, 오히려 출판업의 매력과 장점을 일러 주셨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동아리에서 편집장을 맡았던 그때의 성취감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잘할지도 모른다고, 아니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한 명의 문학청년은 작가의 꿈을 접고, 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내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다른 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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