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Feb 01. 2019

재수의 일기장

서문

다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분명 금의환향을 하고 싶었었는데,

서른 살의 임고 재수생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스무 살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의 삶이 흘러가면서

스물아홉,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처음으로 중등 임용 시험을 치렀다.


조금 더 쿨한 척을 하자면,

조금 더 괜찮은 척을 하자면,

1년을 온전히 시험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라며

그러니까 불합격하는 게 당연하다며

내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 버리고 나면

작년에 내가 기울였던 노력과,

공부하느라 책상에 앉아 있었던 무수히 많은 시간과,

그 무엇보다 그 시간을 열심히 버텼던 나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고

장렬하게 임용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에게 한 번은 더 도전해 볼 기회를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여

1년 더 수험 생활을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남은 몇 달간 단거리 경주하듯 공부했던 작년처럼 공부할 자신은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떨어진 자의 핑계일 수 있겠으나) 그렇게 공부해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내가 준비하는 중등 임용 시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년과 달리 열 달 정도를 길게 잡고 공부해야 하는,

장거리 경주가 될 올해의 수험 생활에는 내 스스로에게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뿐만이 아니라

브런치에도 다시 돌아왔다.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글을 써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는 시험을 한 번에 턱 하니 합격해서 멋진 성공담 같은 걸 들고 이곳에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런 글보다 때로는 수험생의 지질한 기록이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올해는 때때로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로 나의 재수 생활이 성공적으로 끝나지 못하더라도

올해 나의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서울에서 마지막 사립학교 정교사 시험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달리, 봄'이라는 독립 서점에 들러

<오늘 헤어졌다.>*라는 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헤어진 직후, 머리로는 이 헤어짐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같은 머리로 끊임없이 생각이 뻗쳐나가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도 분진처럼 계속 이 이별의 여파가 떠다녔다. 상처 받은 것은 난데, (여기서 상대방도 받지 않았겠느냐고 하지는 말자. 알 바야 쓰레빠야.) 불순물 같은 구질구질하고 의미 없는 생각이 이어졌다. 먹고사는 일에도 자꾸 방해와 지장이 됐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봤자 이 기분을 전염시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럴 거면 팔아서 돈이나 벌어보자. 그 새끼 떠나고 뭐라도 나는 게 있어야지 싶은 마음으로 매일매일 미련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에 대한 미련은 물론 아니다. 미련스럽기 짝이 없는 내 감정 상태에 대한 미련일기다. 모든 것은 헤어진 나의 시점에서 기록되었으므로 아주 편파적이다. 익명으로 출판하였으나 누군가 촉이 좋아 알아낼지도 모르고, 그러면 저격일기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니 픽션을 가미한 척해두겠다. 아니 그게 왜 거짓말이야, 애초에 연애 자체가 픽션인데. 우주의 중심인 척하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데, 그래서 이 책은 공식적으로 픽션이고 나발이다.
* 이 책의 저자는 '구여친', 부제는 '실시간 이별극복관찰기'이다. 나는 이런 류의 책이 담고 있는 솔직한 자조와 건강한 아픔이 너무나도 좋다. 쿨한 척, 괜찮은 척하지 않는 사람다운 모습이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떤 측면에서 용기를 얻었다.

내 인생에서 딱 한 번뿐일 임고 재수생의 시절도 충분히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용기 말이다.

지나간 시절은 미화되게 마련이므로,

지금 이 순간이 임고 재수생의 솔직한 감정 기복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일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올해 내가 쓰게 될 글들은 아마 이전의 글들과는 그 톤(tone)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만큼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그 얘기를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는데,

요즘은 그 말이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을 때가 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할 때에는,

편집자를 그만두고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에는,

임용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만큼 옹졸하고 마음의 그릇이 작아질 수 있는지

정말이지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써나갈 올해의 글들은 아마도

겪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재단했을 과거의 나에 대한 반성이며,

사람들과의 연락을 (자의든 타의든) 피하게 되는 현재의 나에 대한 고백이며,

훗날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젊은 세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 위한 거울이 될 것이다.


혹여 다가오는 설날을 앞두고

나처럼 친척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고 싶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분이 있다면,

새롭게 삼십 대를 시작하고 싶었던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다시 돌아온 나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도 작년의 내가 올해의 나에게 남겼던 편지**의 한 구절로

새해 인사를 대신하고 싶다.

당신 아직 젊기에, 당신 너무나 수고했기에.

**예전에 글을 통해 밝혔던 것처럼 나는 새해가 되면 그해 연말의 나를 위한 편지를 미리 쓰고는 한다. 그러니까 1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셈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즈음 너는 임용 1차 시험의 합격자 결과를 받은 이후겠지? 그 날이 오리라는 게 지금은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맞이했을 너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괜한 강박증을 지녀서 시험 날까지 아등바등 기를 쓰고 공부했을 나를 알기에, 그저 장하다고 그저 존경스럽다고 말해 주고 싶다.
시험 결과가 너의, 곧 나의 노력을 다 보여 주지도, 능력을 다 반영해 주지도 못함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네가 알알이 공부로서 찬란한 시간을 보내왔다면, 그것으로 지난 하루하루에 떳떳할 수 있다면, 다가올 삼십 대의 네 삶에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꼭꼭 말해 주고 싶다.
인생은 길고, 긴 인생 전반에서 지금의 몇 년은 결국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에, 혹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해도 실패한 것은 아님을 기억했으면 해. 그 경험이 언젠가 만날 아이들과의 소통에서, 공감과 이해의 근원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스물아홉의 너는 누구보다, 아니 너 스스로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노력했고 멋졌어. 지난 이십 대를 버티듯 살아와 준 나에게 고마움과 자부심을 미리 느끼며 오늘은 이만 쓰려고 해.
긴 말은 필요없을 것임에. 너는 너무나 수고하였을 것임에. 나의 삶은 그렇게 인정받을 만하기에, 오늘은 내가 나를 꼭 격려해 주는 날로 만들어 주었으면 해. 고생했다, 스물아홉의 나!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인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