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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Dec 27. 2017

마지막 인사

<라라랜드>와 <이터널 선샤인> 사이 그 어디쯤에서

  몇 주 전은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라라랜드>를 처음 보았던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날 이미 직감했던 것처럼, 올해 크리스마스이브 날까지 나에게 있어 <라라랜드>를 능가한 영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게는 <라라랜드>가 소위 말하는 ‘인생 영화’였던 것이다.

  1년 전 그날 나는 <라라랜드>의 마지막 10분, 그러니까 그 유명한 ‘상상의 플래시백’ 장면에서부터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한참을 훌쩍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네가 아니라 당시의 나에게 ‘전’ 남자친구였던 한 선배가 떠올라 울었던 것만 확실하다. 그러니까 <라라랜드>를 보고도 너를 떠올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작년 12월의 일이었다.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 세바스찬(왼쪽)과 미아(오른쪽).

  몇 주 전은 우리가 함께 몸담았던 동아리의 연례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너와 나는 헤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OB 선배로서 동아리 활동을 계속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본능적으로 터득했던 것 같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이 있지 않는 방법을. 또한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성적으로 납득했던 것 같다. 나에게서 너를, 너에게서 나를 제하고도 이 동아리는 나와 너에게 대학생활의 전부라는 것을.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마냥 즐겁고 신나게 그날 하루를 보내고 올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연례행사를 다녀오는 것으로 내가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역으로 ‘검산’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올해도 나는 때때로 난감하고 짜증날 수는 있겠지만 너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올해 12월의 일이다.


너는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네가 내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선배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 모양이었다. 네 생각보다 내가 일찍 돌아오게 되면서, 우리는 기어코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평범하고 흔한 안부 인사로도 충분했을 것을, 이놈의 오지랖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발동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직장 생활에 치이고 있을 네가 순간적으로 걱정된 것인지, 과하게 따뜻한 안부 인사가 튀어 나갔다. 나야 원래 이런 사람이니 그렇다 치고, 적당히 대꾸하다가 슬슬 자리를 피할 법한 네가 그날따라 그러지 않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서로를 똑바로 마주한 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쌍방 과실’이 빚어 낸 기묘한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직감했다. 오늘은 네가 나와의 대화를 피하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오늘과 같은 날은 우리 사이에 더 이상 없을 것임을. 그래서일까, 나는 너와 단 둘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우연을 가장하여 만들어 냈다. 1차 뒤풀이 장소에서도, 2차 뒤풀이 장소에서도, 심지어 뒤풀이 장소를 빠져 나와서까지도. 사정을 모르는 YB 후배들 눈에는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한 동기 사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분명 동아리 동기가 맞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번의 사귐과 두 번의 헤어짐을 함께 겪은, 서로가 서로의 첫 연인이었던 그런 동기였을 뿐.




  나는 5년이 지나서야 ‘나만의’ 동기였던 사람에게 묵혀 두었던 질문들을 던져 볼 수 있었다.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내뱉은 ‘그때는 왜 그랬어?’라는 내 물음에 너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는 너무 미숙했었다며 사과했다. 항상 내가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고도 말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혼잣말을 하며 한숨도 내쉬었다. 

  나는 우리의 연애를 힘들게 했던, 결국은 우리의 문제였음에도 싸움의 불씨를 제공한다고 여겨졌던 그 시절 그 지인들과는 여전히 잘 지내는지도 물어보았다. 너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랜 시간 참아 왔던 것이 터져 크게 싸웠고, 이제는 남남처럼 지낸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이리 될 것을, 결국 이렇게 될 것을 그때는 왜 그랬냐며 장난스럽게 힐책하는 내 말에 너는,

‘그러게, 그걸 이제야 알았네. 너무 늦었지.’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을 슬며시 훔쳤다.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너의 말들이 진심처럼 느껴져서, 아니 진심이라 믿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너는 말했다. 너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잘해 주지 못하는 무심한 사람인 것 같다고, 나만큼 자신을 좋아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대하지 않았었냐고.

  나는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너에게 나는 ‘나를 이만큼이나 좋아해 줄 다시없을 사람’이었지만, 나에게 너는 ‘내가 그만큼이나 사랑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차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몇몇 순간들이 있다. 너를 미워하려 했던 수많은 나날 속에서도 끝끝내 온전히 미워할 수는 없게 만들었던, 영원처럼 반짝이던 순간들.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추억들. 그런데 너 역시 척하면 척, 그 순간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내 기억이 한낱 허상이 아니었음에 안도했다. 그와 동시에 너 역시 진심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너를 만나는 내내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의 내 마음에게 뒤늦은 위로도 건넬 수 있었다.

  너는 또 말했다. 나를 만난 이후 독서하는 습관이 생겨서, 한 달에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 보려 노력한다고. 너는 내가 헤어질 줄 모르고 빌려주었던 ‘알랭 드 보통’<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책도 올해 들어서야 겨우 버렸다고 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책만큼은 빌려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올해 들어서 결국 <우리는 사랑일까>를 다시 구입했는데 말이다.


너도 나와 함께 살고 있었구나, 내가 너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대화는 꽤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몇 년간 응어리져 있던 감정이 쉽게 멎을 리 없었다. 이야기가 계속되자, 순간 나는 우리가 연인이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다른 모든 선후배들이 배경처럼 희뿌옇게 흐려지면서, 그 순간 그 공간에는 너와 나 둘밖에 없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잊고 있었던, 내가 너를 좋아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너와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유쾌했고,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그날조차 그랬다.

  그때 선후배들이 슬슬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다른 인사 없이, 그렇게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2차 뒤풀이 장소를 나왔다. 언제 그랬냐는듯 너는 저쪽에, 나는 이쪽에 서서 각자의 일행들과 함께 대기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마지막 눈인사도 없이 각자의 일행들에 섞여 뿔뿔이 흩어졌다.

  곧 스물아홉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딱 적당한 선이라는 것을, 이쯤에서 끝나야 ‘아름다운 이별’ 정도로 불릴 수 있음을. 그렇게 너는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만나고 있는 지금의 여자친구에게로, 나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는 현실 앞으로 돌아갔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처럼, 우리들만의 ‘SEB'S’를 빠져 나와 각자의 자리로.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재회했던,그리고 이내 곧 헤어졌던 재즈 클럽의 이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홀로 영화관에 가서 특별 상영되고 있던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왔다. 일찍부터 명작이라는 얘기를 무수히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끝까지 보지 못했던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집중해서 보면 혹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내 마음속 ‘올해의 영화’로 당당히 등극할 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짜임새가 좋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너를 떠올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너는 내가 그만큼이나 사랑했던, 아직은 유일한 사람이니까. 나는 아마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또 헤어진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너를 사랑했던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너와 나누었던 대화의 ‘잔상’ 때문에 나는 이후 며칠 동안 꽤나 많이 울었다. 아프고 슬픈 연애를 했던 그 당시의 내가 떠올라서인지, 그래도 내 진심이 결국 무의미하지는 않았구나 싶어 안도해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는 아마 행복해질 것이다. 내가 누군가와 만남을 시작한다면, 그 누군가에게 나는 ‘그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므로. 나는 이제 내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면 시작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니 너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말만큼은 해 주고 싶었다.


그때 그 옥상에서 보았던 밤하늘은 분명,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찰스 강에 누워 바라보았던 광경과 다르지 않았다고. 그곳에 나를 데려가 준 너 덕분에 참 많이 행복했었다고. 이제는 정말로, 안녕.

<이터널 선샤인>에서 꽁꽁 언 찰스 강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는 클레멘타인(왼쪽)과 조엘(오른쪽).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동안 브런치를 찾지 못할 듯하여, 저 역시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셨던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 늦지 않게 수험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고 계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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