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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Aug 05. 2017

우리 동네 오해영

  가끔씩 지인들로부터 ‘듣다가(혹은 보다가) 네 생각이 났어’라며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가수 백아연 씨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라는 노래가 차트 역주행을 할 때 그러했고, tvN에서 <또 오해영>이라는 월화 드라마가 방영 중일 때도 그러했다. 사람들의 보는 눈이란 대개 비슷한 것인지, 나 역시도 해당 콘텐츠를 보며 자연스레 내 모습이 겹쳐지곤 했다.

* 2015년 5월에 발매된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의 가사는 백아연 본인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럴 거면 바래다주었던 그날 밤 넌 나를 안아 주지 말았어야지 / 설렘에 밤잠 설치게 했던 그 말 그 말도 말았어야지”라는 후렴구가 특히 인상적이다.
나는 마음을 잘 내어 주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은 쪽으로 보는 습성이 있어, 쉽게 믿는 편이기도 하다. 그 덕에 여러 사람들과 조금 더 일찍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중의 대부분과는 여전히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성향 덕분에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법한 일들도 많이 마주해야 했다. 내가 내어 준 진심을 받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따뜻한 마음이 아닌 서늘한 상처가 돌아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의 마음은 쉽사리 누군가에 의해 놀아났고, 휘둘렸고, 그래서 아팠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누군가를 믿고, 마음을 내어 주는 나를 보며 어떤 언니는 ‘불나방’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서도 이러했으니,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오죽했겠는가. 나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아니, 숨길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도 같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이지, 애매모호하거나 미적거리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나는 단순한 게 좋았다. 그편이 서로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간에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밀당’을 잘할 턱이 없다.

  아마 상대방은 일찌감치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호감이 있음을, 내가 당신에게 빠져 있음을. 그렇게 나는 관계의 주도권을 진작 상대방에게 넘겨준 채 다음을, 또 그다음을 기약하고 고대했다. 그렇다고 애써 무덤덤한 척, 별로 관심 없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척을 하기에는 능력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상처 받을지언정 솔직하게 표현하고,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서, 어떠한 후회나 미련도 남기지 말자는 모토로 살아왔다. 내 지인들이 <또 오해영>을 보며 나를 떠올린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이 아닐까.




  <또 오해영>의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은 진정한 ‘걸크러쉬’**의 면모를 풍기는 인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녀는 드라마 내내 자신의 마음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고 기꺼이 책임지고자 했다. 직진하는 용기가 귀해진 시대에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멋진 여성’을 뜻하는 말로, 요즘 널리 사용되는 신조어이다.

  혹시라도 내 마음이 다칠까, 작은 생채기라도 날까 싶어 우리는 쉽사리 솔직해지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도록 내 마음을 더 단단히 꽁꽁 싸맬 뿐이다. 그러다 상대방이 ‘패’ 하나를 공개하면, 거기에 맞추어 나의 ‘패’ 하나를 슬쩍 흘리면서 서로의 관계를 꾸려 나간다. 이 또한 꽤나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므로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 방식에 맞지 않는 사람이며, 오해영이라는 인물 또한 그러했을 뿐이다.

  그녀는 10회에서 자신에게 키스한 뒤 아무 연락이 없는 ‘박도경(에릭)’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오해영: 다섯 번 울리고 받으려 했는데 세 번만에 받았어. 나는 너무 쉬워, 그치?
강도경: (침묵)
오해영: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아직도 재니?
강도경: 와 줘.
오해영: 내가 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쉬운 여자인 줄 알어?
강도경: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쉬운 여자인 줄 아냐며 역정을 내던 오해영은 한달음에 그에게로 달려간다. 나는 속도 없는 그녀가, 사랑 앞에서 재지 않는 그녀가 너무 좋았다. ‘보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면 나 역시 그에게로 달려갔을 것이므로.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나마 함께 그녀와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재회한 강도경에게 그녀는 말한다.

오해영: 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쉬운 여자야. 자, 이제 뭐해 줄까?
강도경: 좀만 안아 주라.
2016년 5월 31일 방영된 <또 오해영> 10회 중에서

  그녀는 당연하게도 온 마음을 다해 그를 꼭 안아 준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쉬운 여자였으므로.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조금 쉬워지면 어떤가.

  나는 오해영이라는 여주인공이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에게는 이러한 드라마가 히어로물 영화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오해영이 강도경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녀가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오해영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람들에게 ‘네 방식이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인정받은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나는 오해영처럼 행동했다가 “마음을 너무 빨리 주지 마”라는 조언을 수시로 들어야 했으며, 드라마와 달리 수많은 ‘새드 엔딩’을 겪어야 했다. 물론 결국은 사람의 문제였겠지만. 어쩌면 이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실현 가능성이 너무나도 희박한, 이상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렵지 않은 여자가 되고 싶은 나는, 이런 나야말로 속도 없는 시청자일까.




  어느새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얼추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마음을 너무 빨리 주지 마”라는 조언에, 노력해 보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다짐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던가!

  대신 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치고, 가다가 상처 입고 돌아온 내 마음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사전 예방이 거의 불가능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후 관리에 힘쓰기로 한 것이다.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나는 경험적으로 내게 맞는 방식을 터득해 왔다. 지금의 ‘회복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의 역사가 있었던가!

  이렇듯 내 마음의 앞가림은 꾸역꾸역 해 나가고 있는데, 아주 가끔씩 이런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만약 내 딸이 나를 닮아서, 나처럼 사람을 잘 믿고 마음을 잘 주면 어떡하나 싶은 것이다. 엄마라는 꿈이 이루어질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참 어이없는 걱정이기는 하지만. 내가 겪어 보았던 아픔이므로, 딸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를 닮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이번에는 오해영의 어머니인 ‘황덕이(김미경)’ 여사의 내레이션이 나름의 해답을 던져 준다. 그렇게 남자에게 데어 놓고도 강도경에게 줄 도시락을 싸려 하는 딸이 영 마뜩잖지만, 결국은 도시락 재료를 사서 들고 오는 오해영의 어머니. 이 드라마에서 ‘걸크러쉬’를 내뿜는 또 다른 그녀, 황덕이 여사는 이렇게 읊조린다.

1985년 5월 22일, 이 동네에 여자아이가 하나 태어났지요.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
나를 닮아서 미웠고, 나를 닮아서 애틋했습니다.
왜 정 많은 것들은 죄다 슬픈지.
정이 많아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을 친년이도 겪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래서 미웠고 그래서 애틋했습니다.
차고 오던 깡통도 버리지 못하고 집구석으로 주워 들고 들어오는 친년이를 보면서 울화통이 터졌다가, 또 그 마음이 이뻤다가.
어떤 놈한테 또 정신이 팔려 간, 쓸개 다 빼 주고 있는 친년이.
그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 주면 그래도 덜 슬프려나.
그딴 짓 하지 말라고 잡아채 주저앉히는 사람이 아니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좀 덜 슬프려나.
그래서 오늘도 친년이 옆에 앉아 이 짓을 합니다.
2016년 6월 21일 방영된 <또 오해영> 16회 중에서

  함께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황덕이 여사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응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 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도 내 딸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정 많은 것’으로 살아야겠다고 슬그머니 다짐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쉽고 가볍게 생각하는 그런 작자(?)들 때문에 내 안의 ‘오해영스러움’을 잃고 싶지 않다. 드라마와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이십 대 후반의 시청자는 이렇게 오늘도 자기 합리화를 한다.

  작년 내 생일에 <또 오해영>이 18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6년 전, 우리 동네에도 여자아이 하나가 태어났었다.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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