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Jun 29. 2019

코코가 되어

애도 일기 1

  

   할머니를 떠나보낸 지 세 달이 다 되어 간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이곳에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남겨 놓은 것을 무척 후회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일상을 글로 남길 수도, 그렇다고 생각만 해도 눈앞이 흐려지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아이를 떠나보내고 얼마쯤 뒤에야 그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어쩐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쓰인 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시를 알게 된 학창 시절 이래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시인이 아닌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문자로 꾹꾹 눌러 쓰기까지 석 달이 걸린 셈이다. 너무 짧은 시간인 걸까. 아무래도 너무 짧은 시간인 듯싶다. 그런데 시간이 더 흘렀다가는 할머니와 함께했던 그 마지막 순간의 기억조차 흐려져, 내가 느꼈던 그 무수한 후회와 자책 그리고 부끄러움조차 잊어 버릴까 봐 용기를 내어 그 날의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할머니는 내가 이곳에 두 번째 요양 일지를 작성한 그 날 돌아가셨다. 그 사실이, 할머니와의 이별이 나에게 얼마나 급작스러운 일이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할머니를 매 주 찾아뵙던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내가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웃어 주시던, 손뼉을 치며 나를 반겨 주시던 나의 할머니는 그 시기에 이미 계시지 않았다. 몸 속에 마치 소리 나는 공 하나가 들어 있는 듯, 할머니가 숨을 쉬실 때는 쌕쌕 거리는 소리가 코러스처럼 울려나왔다. 그 소리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서도, 할머니에게 훌훌 털고 빨리 일어나자는 흔한 격려를 해서도 안 될 것 같이 느껴지게 하는 소리. 나는 그래서 때때로 이곳에 글을 쓰며, 때때로 외장하드에 담긴 영화 파일을 틀어 놓으며 애써 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 무기력함이 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이자, 엄습해 올 슬픔에 대한 외면이었음을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오후의 어느 순간, 할머니의 호흡이 갑자기 가팔라졌다. 원래도 호흡하는 것이 편치는 않으셨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가장 위급한 순간임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는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리지도,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디지도 못하는 그저 나약한 한 명의 타인일 뿐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피부에 와닿은 절망감과 무력감의 크기는 내 인생을 통틀어 처음이자 최초로 느껴보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할머니의 곁에 있어 드리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누군가와의 이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울면서도 동시에 비현실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느낀 비현실감이 괜한 것은 아니었는지, 할머니는 십여 분이 지나고 원래의 호흡을 회복하셨다. 할머니는 당신이 월성 이 씨라며, 내 안 죽는다며 농을 섞어 얘기하셨던 것도 같다. 원래대로라면 그 무렵 포항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나와 동생에게도 걱정 말고 집에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다음주에 보자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분명 당신은 안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그 말씀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말을 믿고 싶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상황은 좋지 않았고, 그래서일까 나는 할머니댁을 나오기 전 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 두었다. 포항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고, 나는 내내 창 밖을 바라보며 울었던 것 같다. 혹시 조금 전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 다시 생기면 아빠가 연락해 주기로 하셨기 때문에, 아파트에 도착해서도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할머니댁에서 자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면 우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그 와중에도 저녁을 먹겠다며 대패 삼겹살을 구울까 하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샤워를 한 것처럼, 나는 짐을 챙겨 엄마를 따라 집을 나섰다. 나는 그 와중에도 너무 많이 울어서 헐어 버린 내 코가 아프다는 걸 자각하고, 평소엔 쓰지도 않던 손수건을 두어 장 챙기는 철저함을 발휘했다. 어쩌면 이제는 손수건까지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왜 가지 않느냐고, 할머니가 너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모르냐고 말할 수 없었다. 나부터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최선을 다해 액셀을 밟고 계신 것을 알았지만, 다시 할머니댁으로 향하는 그 시간은 평소보다 너무나 느리게 흘렀다. 창 밖에는 서글프게도 벚꽃이 한창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 봄에 기억 나는 벚꽃 풍경은 그날의 광경 하나뿐이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냐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따져 물었던 것도 같다. 시간은 흘러 다시 할머니댁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할머니가 누워 계신 방 안으로 직행했다. 할머니는 조금 전의 그때처럼, 몸을 폴더처럼 접으시고 힘겹게 숨을 내뱉고 계셨다. 아빠는 내가 다시 온 것에 약간 놀라는 눈치로, 할머니께 엄마가 올 때까지 조금만 견뎌 달라고 애원하고 계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잠시 뒤 호흡이 조금이나마 정상적으로 돌아오신 뒤에야 내가 온 것을 발견하셨다. 왜 다시 왔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다시 힘겹게 숨을 몰아쉬셨다. 점점 힘든 상황이 발생하는 간격이 짧아졌다.


   모든 드라마들은 틀렸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여 주었던 그 수많은 드라마들의 장면을 시청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초인적인 힘이 솟아나나 보다 생각했었다. 마지막으로 남겨야 할 말은 하고, 주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눈짓으로나마 인사도 하고, 그것이 삶의 마지막 모습인 줄 알았다.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작은 통증에도 정신이 없어지고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마당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신 할머니의 손가락 끝에는 푸른색 꽃들이 점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빠가 피가 통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부어 있어서 그렇지 항상 따뜻했었던 할머니의 발에 서늘한 기운이 서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할머니의 곁에 있었다. 아빠는 할머니의 발을 만지고,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엄마는 할머니를 뒤에서 안고 있었다. 할머니는 몸에 남아 있던 많은 것들을 비워 내기 시작하셨다. 엄마 아빠가 그 모습만큼은 보지 않기를 바라셨는지 그때마다 잠깐씩 거실에 나가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이 생을 떠나기 위해 몸을 가볍게 만들고 계셨다. 


   나는 엄마 아빠처럼 어른이 아니라서, 또한 엄마 아빠처럼 할머니에게 잘해 드린 것이 많지 않아서 초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쌕쌕 거리는 숨소리도 거의 내뿜지 않는 할머니의 곁에서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말했다. 뒤늦게 사랑한다고도 말했다. 할머니는 실눈을 떴다가 감았다 하시는 것으로 아직 당신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알려주셨다. 아빠가 우리가 자꾸 부르니까 할머니가 훌훌 털고 가시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정말 최후의 순간에 할머니께 가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내가 금방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인사도 없는, 고요한 이별이었다. 할머니가 십 대의 어린 나이에 시집 와 구십 대에 눈을 감기까지 평생을 사셨던 그 집에서 이루어진, 작별이었다.

 



   종교가 없는 나는 사실 사후 세계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또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 따위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다만 할머니를 떠나 보내고 나니, 내 마음대로 할머니가 좋은 곳에 가셨으리라 믿지 않고서는 견딜 수없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화 <코코(Coco)>를 떠올렸다.

   <코코>는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수험생의 길을 선택한 친한 언니가, 나처럼 종교가 없는 그 언니가, 가장 그럴듯한 그래서 믿고 싶어지는 사후 세계를 그린 작품이라며 추천해 준 영화였다. 나 역시 작년 겨울 임용 1차 시험의 합격 여부를 모른 채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사후 세계라면 납득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할머니를 잃고 나서 그로 인한 순전한 슬픔에서라기보다, 어쩌면 남아 있는 내가 덜 힘들기 위해 때때로 할머니가 <코코> 속 사후 세계에 살고 계시리라 상상하고는 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상상이 아닌 것은, 내가 하루하루 할머니에게 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언젠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이 세상과 이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석 달 전 할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될 것이다. 부디 그때에, 내가 할머니에게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기를, 할머니에게 가는 길을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Remember me (날 기억해줘)
Though I have to say good bye (난 떠나야만 하지만)
Remember me (날 기억해줘)
Don't let it make you cry (이것 때문에 울지 말아줘)
For even if I'm far away, (왜냐하면 내가 멀리 있다고 해도,)
I hold you in my heart (난 널 나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니까)
I sing a secret song to you (난 너에게 비밀의 노래를 부르네)
Each night we are apart (우리가 떨어져 있는 밤마다)

Remember me (날 기억해줘)
Though I have to travel far (내가 비록 멀리 떠나야만 하지만)
Remember me (날 기억해줘)
Each time you hear a sad guitar (슬픈 기타 소리를 들을 때마다)
Know that I'm with you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아줘)
The only way that I can be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네가 다시 내 품에 안길 때까지)

Remember me (날 기억해줘)                           
                                                                           - 영화 <코코>의 OST “Remember me”


작가의 이전글 부은 손을 보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