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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Mar 02. 2022

우리의 항해 첫날

초임 교사의 지금 우리 학교는 1

2년 만에 다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 중 가장 바쁘고, 학생들과의 친밀도가 가장 낮다고 볼 수 있는 개학 첫날이 지나갔다. 과연 나는 지난 2년 동안 조금이라도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까. 돌아보면 오늘도 '쓸모없는 분주함'으로 점철된 하루였던 것 같지만, 이 시기가 미래의 나를 위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올해는 나의 미숙함을 그때그때 솔직하게 드러내 보려고 한다. 물론 학기 초의 다짐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1. 종례 인사가 '사랑합니다'라니?

낯선 학생들과의 대면에서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는 뻔뻔함이 확실히 증가했다. 어차피 무서운 선생님이 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터라 첫날부터 참으로 많이도 웃었는데(나만 재미있고 웃긴 건 아니었겠지...?), 그러다가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였던 것일까.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닌데, 내 입에서 "우리 반은 종례할 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할 거예요."라는 말이 튀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얘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말을 첫날부터 무를 수는 없어서,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종례를 했는데, 착하게도 많은 아이들이 얼추 반응을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종례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내일은 좀 더 뻔뻔하게 아이들에게 손 모양으로 하트를 만들며 '사랑합니다'를 외쳐 볼까?

     나는 분명 아이들을 예뻐하는 것 같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으며, 앞으로도 과연 그런 일련의 일들이 내 인생에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 흔히 자기 아이가 생기면 교사로서 한 차원 성장한다고들 말한다. 그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아이들에게 나눌 뿐이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간 저 말에서, 나는 나의 교직관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배려와 존중을 할 줄 아는, 인간다움을 느끼고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수많은 좌절과 실패의 경험 속에서도, 결국은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쩌면 아이들을 예뻐해 주고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것, 그래서 그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늘의 나에게는 분명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며칠 뒤, 몇 달 뒤, 몇 년 뒤에는 얼마나 허황되고 이상적인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올해 개학일의 나는 분명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내일도 뻔뻔하게 '사랑합니다'를 외쳐 보리라!


2. 학부모님의 입장을 감히 추측해 보며

재작년과 달리 올해는 학부모님들께 보내는 편지를 봉투에 넣어 아이들 편에 들려 보냈다. 원래 같으면 자녀가 이렇게나 자라나 중학교 입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들 뭉클하셨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그런 기회들을 모두 놓치고 얼마나 아쉬울까 싶으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얼굴도 보지 못한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궁금하고 또 그만큼 염려가 될까 싶으신 것이다.

     재작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서 아이들에 대한 기초 자료를 조사하라고 했을 때, 그때 학부모님들의 글을 내가 먼저, 그것도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학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어려 보고자 노력하면서 그분들에게 나를 먼저 소개하고, 학부모님들이 궁금해 하실 만한 정보를 먼저 알려 드리고,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내가 알아 두어야 할 정보를 먼저 요청드려 보고자 했다. 뭐니뭐니 해도 내가 가르칠 아이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은 학부모님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어느 순간 툭 하고 튀어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이번 신임 교사 연수를 들으며 인상적이라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고, 내가 존경하는 선배 교사 또한 이러한 방법을 쓰고 계신다고 들었던 터라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그분들을 믿고 이것만큼은 해 보자 싶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 반 아이들의 학부모님은 내가 아이들 편에 들려 보낸 하이얀 봉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런지.

     출근 후 1분도 제대로 쉬지 못한 정신없는 와중에, 학부모님들께 드리는 편지와 우리 아이 소개서를 일일이 접어 봉투에 넣고 있자니 소위 '현타'가 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그래서 더 유능한 선배들은 개학 전에 이 모든 작업을 완료해 두신 거였다...!), 그래도 그분들의 귀한 자녀를 나 또한 귀히 여기고 있다는 마음만큼은 전달되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물론 이 또한 너무 큰 욕심이겠지만.


3. 가장 어색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찰칵!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매일같이 종례 때마다 아이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 놓으면,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그 사진들을 통해 표정이 좋지 않은 아이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학기말에 저 사진들을 모아서 동영상을 만들면 꽤 의미 있는 기록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종례란 모름지기 일찍 마치고 파하는 것이 최고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매일 실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꼭 사진을 남겨 놓고 싶었다. 우리 반이 가장 친하지 않고 어색했던 하루일 것이고, 이날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첫날부터 사진을 찍겠다는 담임이 귀찮기 그지없었을 텐데, 착한 아이들은 쭈뼛쭈뼛 교탁 앞쪽에 모여 나름의 포즈를 취해 주었다.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이렇게 낯선 상황에서도 꽃받침을 하는 끼 많은 아이도 있고, 무표정한 얼굴로 긴장한 듯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아이도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서 드러내는(그리고 이런 친구들은 대부분 교과 선생님에게도 초반부터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이름이 자주 불리게 된다) 친구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상대적으로 내향적인) 친구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이름을 불러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과연 우리의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날, 우리는 첫날 찍은 이 사진보다 얼마만큼 가까워져 있을까. 부디 아이들의 웃음이 그때도 사라지지 않았기를, 더 많은 아이들이 더 활짝 웃고 있기를. 그렇다면 나는 나름대로 괜찮은 담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역시, 아직까지 자신의 능력과 주제를 모르고 너무도 크나큰 기대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는 초임 교사가 분명하다.

미숙하지만 애정만은 가득한 우리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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