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교사의 지금 우리 학교는 2
아래의 이야기는 3월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나, 그 무렵 내가 써 두고 올리지 못한 글이다. 두 달 정도가 지난 때늦은 일기인 셈이다. 지금의 내 마음과 사뭇 다른 결을 지닌 글이라 지워 버릴까도 고민했으나, 이 글을 쓸 때의 내 마음은 정말로 이러했으니 그냥 놓아두기로 한다. 3월의 내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 사이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테니까.
1.
3월 2일 입학식 날, 스물네 명(알고 보니 한 명은 3월 2일자로 전출 예정인 학생이었다)의 가장 어색한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겠다며 우리 반 단체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런데 그 첫날이, 우리 반 아이들 지금까지 전원 등교한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들에게 다시 스물네 명이 온전히 모이는 날, 그날은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라고 공표해 두었는데, 4월이 되기 전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내가 코로나에 아직 걸리지 않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니면 사실 걸렸었는데 그냥 넘어간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담임 없는 아이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 3월 초반에는 정말이지 몸을 사리고 있었는데, 어쨌든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이들을 보지 못한 날은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겠지.
코로나로 학교에 오지 못한 아이들의 학습 결손을 염려하다가도, 뒤돌아 서면 내 앞에 쌓여 있는 갖가지 일들과 월 출결 마감이 동시에 두려운 요즘이다. 3월 말이 다가오고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버텨 내었다' 말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2.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학년 내에서도 가장 활발한 아이들로 불린다.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해 보신 많은 교과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반의 성향 덕분에 수업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며 좋은 말씀을 많이들 해 주셨다. 물론 나 역시 우리 반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함께하고 있으니 이러한 점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담임의 입장은 약간 다를 수 있음을 요즘 깨닫고 있다.
워낙 아이들을 무섭게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터라,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의 활동적이고 장난기 많은 기질이 더욱 제약 없이 쟈유롭게 발현되는 것인가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각자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싶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이들이 배워야 할 예의와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내가 그것에 대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염려되기도 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연차가 쌓이면, 나만의 어떠한 '틀'이라는 것이 정말로 생기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3학년 때까지 내내 담임을 해 달라는 말이나, 조용히 할 테니 주말에 같이 배드민턴을 치며 놀자는 이상한 거래(?) 제안을 받을 때면, (3월 초에 무슨 말인들 못 하겠냐마는) 그래도 그 말 한 마디에 지쳐 있다가도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게 요즘 나의 일상이다.
성장기 아이들의 '텐션'을 소화하는 것이 버거워 공강 시간에 멍하게 교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가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굳이 우리 반에 올라가 괜히 기력을 뺏기고(?) 내려오는 내 모습에서 내가 이 아이들을 예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부디 이 마음의 수명이 너무 조금 천천히 다해가기를 바라 본다.
3.
하루살이처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처리하듯 보낸 나날의 연속이었다. 선배 선생님들은 3월이 유독 바쁘고, 4월만 되어도 조금 나아진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러한 4월의 기적이 찾아올까.
학급 경영도, 업무도, 수업도,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해 내지 못한 3월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미소 짓고, 그래서 가능한 한 우리 반 아이들을 많이 보기 위해 교무실과 교실을 자주 오갔던 나의 행동이, 그래도 내가 모든 면에서 별로였던 것은 아니겠지 생각하게 해 주는 최후의 보루였다.
4월에는 부디
또 다른, 더 많은 보루가 생겨나
나의 올해를 지탱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