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끝이라도 있었으니, 운이 좋았지 아니한가

by 소란

2025년 8월 혹은 11월

재작년 여름에 친했던 동료와 재미 삼아 보러 갔던 신점에서 나의 인연이 찾아올 것이라 말해 주었던 시기이다. 그 당시 나는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 꽤 호감이 갔던 누군가와의 관계가 이어지지 못하고 끝이 나면서 꽤나 깊은 절망감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빈말로라도 누군가와 곧 인연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며 그곳을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내후년을 언급하시는 걸 듣고,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하는 막막함을 느꼈던 것이 여전히 생생한데, 눈 깜짝할 사이에 2025년 11월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나는 친한 동생과 함께 올해 초에 예약해 두었던 사주를 보러 갔다. 시작은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연초에 재미있게 보았던 「신들린 연애」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처럼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던 그 동생과 그 출연진에게 사주 같은 것을 보러 가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답시고 당시에 방영 중이던 시즌 2의 출연진 말고, 이미 종영된 시즌 1의 출연진께 문의를 드려 보았는데, 여전히 인기가 식지 않았던 것인지 반 년을 훌쩍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2년 전 어떤 곳에서 올해의 8월과 11월에 인연이 온다고 말씀하시던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결혼보다도 제가 다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길까요?"와 같은 질문을 던져, 나름 교차 점검(크로스 체크)을 실시해 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만약 내심 새로운 곳에서도 올해 연말의 기운이 좋다고 하면, 그 말을 핑계 삼아, 그 말에 의지하여,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 더 애를 써 볼 생각이었다. 새로운 분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다렸던 것도 잠시,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올해는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때에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2009년 11월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2009년의 겨울날, 나는 내가 활동하고 있던 봉사활동 동아리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 학번의 동갑내기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까지(한 번의 헤어짐으로 인해 중간에 한두 달의 공백은 있었지만) 지속된, 어찌 보면 내 대학 생활의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연애였다. 첫 연애였고, 그래서 그와 나 사이에 '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상정하지 못한 채 지속된 관계였다.

그랬던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지극히 내 입장에서) 나의 연애사는 너무나도 오래도록 순탄치 않았다. 누군가를 사귀었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찰나와 같은 한두 번의 만남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인연은 애초에 '시작'이라는 것을 해 보지도 못한 채 스쳐 지나갔거나 혹은 어그러졌다. 거기에는 물론 나의 조급함과 호불호가 명확한 나라는 사람의 성정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노래를 들어도, 예전만큼 마음이 저릿하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노래를 통해 자극될 수 있는 내 연애 경험이라는 것이 너무도 낡고 닳아서, 웬만해서는 빛바랜 그 시절의 감정을 건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2주 전 토요일에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2025 딩고 뮤직 콘서트'*에서 가수 권진아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 내가 관람했던 10월 18일(토) 공연에는 가수 권진아님, 이무진님, 태민님 그리고 그룹 하이라이트가 출연했다.

내가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여러 가수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좌석을 예매해 놓고도, 응원봉을 들고 있는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조금씩 위축되어 갔다. 어떠한 가수 한 사람(팀)을 적어도 나보다는 열렬하게 좋아해야만 이 공연을 관람할 자격이 있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러한 찜찜함은 권진아님의 숨소리 한 번에 형체 없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권진아님의 노래 한 곡은 단숨에 나를 2009년부터 2012년 사이로,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했었다고 기억하는 그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특히 「끝」과 「운이 좋았지」라는 노래가 이어질 때였던가,**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 이 글의 제목 또한 권진아님의 대표곡 제목을 엮어서 지은 것이다. 숨소리도 음악이 된다는 그 뻔한 말의 의미를 체험하고 싶다면, 권진아님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면 된다. 나는 연말에 개최되는 권진아님의 소극장 콘서트 티켓도 예매해 두었다.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써 두었으나, 사정상 취소를 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꼭 권진아님의 단독 콘서트에 가고 말리라!)

나는 분명 권진아님의 노래를 들으며 대학교 시절을 함께했던 그 사람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떠올릴 사람이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때는 그렇게나 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는 것이, 누군가와의 시작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고 기적 같은 일임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끝이라도 있었음에 운이 좋았다 느끼는 것이 과한 것은 아니겠지.

나는 운이 좋았지
스친 인연 모두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참 많이도 아팠지 혼자서 울음을 삼킨 날도 정말 많았지
이젠 웃어 보일게 긴 터널이 다 지나가고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됐으니

아주 자잘한 후회나 여운도 내게 남겨 주지 않았으니
나는 운이 좋았지
내 삶에서 나보다도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나는 운이 좋았지
넌 내게 전부였지

나는 운이 좋았지
내 삶에서 나보다도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 권진아, 「운이 좋았지 」 중에서




2029년

다시 돌아와서, 지난주에 방문했던 역술인분께서는 지금으로부터 4년 뒤, 그러니까 내가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는 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나에게는 20년마다 한 번씩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건가?' 싶어서 약간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롭기까지 했다. 내가 어딘가에서 들은 말을 신봉하며 살아갈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헛헛하고 속상했던 마음을 2025년 8월과 11월이라는 기약(?) 덕분에 조금 더 쉽게 '그러려니'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남은 삼십 대의 모든 날을 2029년이라는 새로운 기약(?) 덕분에 조금 더 유쾌하고 명랑하게, 조금 덜 휘둘리며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내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유효 기간이 만료된 줄 알았던 카드의 유효 기간이 연장된 느낌이었는지도. 뭐, 다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하며 사는 거 아니겠어요!

이러한 글을 길게 써 내려가면서도, 정말로 내가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잘은 모르겠다. 연애할 때의 내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기도 하고, 이미 나는 변해 버렸는데 그것을 모르고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내가 누군가를 바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또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하는 문제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 속에서 조우하는 운명적인 순간들을 목격하며 현실 세계에서 여전히 낭만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지난주 토요일에 사주를 보러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프랑스어 학원을 빠져야 했으나(프랑스어 학원을 다시 다니기 전에 잡아 둔 예약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친한 동생을 기다리며 우연히 들렀던 카페 근처에 신기하게도 최근에 개점한 독립 서점이 있었고, 그 독립 서점의 책방지기분이 프랑스 문학을 너무 좋아하셔서 과거에 프랑스어를 배우기까지 하셨던 분이었고, 그래서 전시되어 있던 꽤 많은 프랑스 작가의 책들 중에서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에세이집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 같은 그런 만남 말이다.

아직은 연장된 유효 기간을 믿고만 싶은 나여서일까. 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글로써 표현해 낸 크리스티앙 보뱅의 문장을 보며,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어쩐지 애틋하고 보고 싶다. 2025년 11월의 밤이 지나간다.

내가 글을 쓸 때 네가 방해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만을 위해서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를 알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만나기 전 어두웠던 무한한 시간 속에서조차 나는 너를 위해 글을 썼다. 이 메마른 사막 속에서 난 사랑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사랑이 올 수 없는 불가능 속에서 사랑이 오는 것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밤보다 더 격렬한 단어로, 밤보다 더 어두운 단어로 글을 썼다. 밤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더 깊은 어두움으로 밤이 흩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던 내가 지금은 사랑 안에서, 밝은 빛 안에서 글을 쓴다. 빛을 지나기 위해, 더는 이지러지지 않는 빛에 도달하기 위해, 세월의 더딘 윤회에도 길을 잃지 않는 빛을 얻기 위해 빛보다 더 환한 단어들로 글을 쓴다.
-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L'homme Joie) 』의 72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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