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브런치 초창기에 발행했던 글로, 브런치북 발간을 위해 재발행합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임계점이라는 게 있다. 이대로면 내 분노는 내일 그 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준비물은 오늘 미리 챙겨야 할까? 아니다. 혹시라도 엄마가 가방을 열어 보면 위험하다. 내일 아침에 챙기는 게 낫겠다.
4월 3일. 맑음.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반의 균형은 이미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노는 무리, 오타쿠 무리, 조용한 무리. 나도 원래였다면, 조용히 공부하는 무리에 속했을 것이다. 내 옆에 앉은 이 녀석만 없었다면 말이다.
이 녀석과 짝이 되었던 첫날,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좋은, 인기 많은 아이였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가장 걱정했던 일진 무리를 피했으니까.
처음 이상했던 것은, 자꾸 내 물건을 떨어뜨리는 행동이었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는. 화내야 할지, 웃어넘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관측자에 따라 괴롭힘과 실수 중 하나로 보일 행동. 나는 그것을 실수로 보았다. 실패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삶은개구리증후군이란 용어를 배웠다.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도망가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천천히 온도를 올리면 도망치지 못한 채 죽는 개구리처럼, 서서히 변하는 상황에 둔감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날, 이 녀석의 '실수'는 내 가방에 우유를 쏟은 것이었다.
그다음 날, 내 의자 위에 압정이 올려져 있었다.
또 그다음 날, 내 목에 뜨거운 물을 쏟았다. 비명을 지른 나를 향해, 그 녀석은 과도한 몸짓으로 사과했다. 반 아이들은 그 몸짓을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실수니까. 나는 개구리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집단 내 구성원은 같은 유희를 공유하며 친밀함을 쌓는다. 같은 반 친구들이 서로 가까워진 건 좋은 일이다. 그 수단이 나였다는 것만 빼면. 그것은 비극이었다.
어느새 그들의 행동은 '실수'의 경계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여전히 실수였다. '괜찮냐'는 말이 그렇게 악의적일 수 있다니.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가증스러울 수 있다니. 무엇보다, 나는 이것에 적응하고 있다니.
어제, 체육 시간. 한 여자애가 던진 물병에 코를 맞고 코피를 흘렸다. 이건 명백한 고의다. 실수로 포장할 수 없다는 판단. 그리고 만만해 보이는 여자애라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다.
그 여자애는 울었다. 반 아이들은 모두 그녀를 위로했다. 방과 후, 그녀의 부모가 학교에 왔다고 한다. 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던 걸까. 방금 전, 나는 교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분명히 이건 잘못되었지만, 바로잡지 않은 건 나였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비등점을 지났다. 다시 돌릴 마음은 없다.
내일이다. 내일 한 번만 더 당한다면, 과열 상태인 나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부모님께서 일식당을 하신다는 사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다행이다.
11월 8일 저녁 뉴스입니다. 4개월 전, 같은 반 학우 7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중학생 A군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 B양의 실수를 과도하게 받아들인 남학생의 혐오 범죄로 판단했으며, 가해 학생의 심신 미약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피해 학급 학생의 인터뷰를 보시겠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제 짝이었는데, 제가 실수해도 웃으며 넘어가 주는 그런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웃음기도 사라지고 결국은... 진짜, 너무 무서웠어요."
12월 1일 저녁 뉴스입니다. 얼마 전 자살한 학급폭행 가해자 A 씨의 유서가 공개되었습니다. 유서의 첫 부분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나는 개구리였다. 아무도 내게 물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