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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 Jun 12. 2020

피터팬과 네버랜드로

김애란-잊기 좋은 이름

10대에는 생일에 큰 의미를 뒀다.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들에게도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 날짜를 말해주면서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11시 59분에서 12시로 넘어가는 자정, 친구들에게서 생일 문자가 한 번에 오면 그게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책이나 드라마에서는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기분은 쉽게 느낄 수 없었다. 열두 시가 되면 울리는 생일 축하 문자 메시지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었다.


축하 문자에 집착하던 아이는 생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어느 순간 결심을 내린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형식적으로 보내는 ‘축하해’ 메시지가 큰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결심을 내린 큰 이유였다. 생일을 홍보하고 다니지 않으니 축하를 해주는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말하지 않아도 축하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농도가 짙어진 축하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생일에 대해 감정이 무뎌졌다. 몇 명이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냈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생일만큼은 큰 걱정과 고민 없이 보내고 싶다. 생일에 신경 쓰는 유일한 한 가지다.


몇 달 전 마주한 나의 생일은 한 손가락에 뽑을 만큼 최악의 생일이었다. 곡선 그래프의 최고점과 최저점이 아닌 평온한 날을 바랐는데, 그렇지 못한 하루를 보냈다. 업무 상 출장이 필요한 주에 내 생일이 있었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평소 같은 일상을 위해 계획에 잡혀있는 출장 일정을 생일이 아닌 날에 잡았다. 그런데 현장 상황 때문에 생일에 출장을 떠나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완벽한 생일 주간을 보내기 위해 계획까지 다 세워놨는데 일정이 전부 꼬이기 시작했다. 
 생일 당일 경기도 광주에서 전라도 광주로 떠난 출장. 으으, 다시 생각해도 짜릿하다! 회사 생활하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나 자신을 달랬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평소처럼 하던 출퇴근이 서울이 아닌 광주로 조금 옮겨진 것뿐이라고. 


  광주로 떠나는 일정은 내 맘대로 안됐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만큼은 서울에서 퇴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돌아와야겠다 다짐했다. 돌아오는 표는 4시 출발-6시 도착. 그런데 미팅이 길어지면서 5시 출발 차로 표를 급하게 바꿨다. 이것 마저도 온 김에 다른 일까지 보고 가자는 상사의 말에 5시 이후의 표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목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생일 축하한다고 점심까지 사준 분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6시 출발로 표를 바꾸면 집 도착시간은 9시. 지인들이 생일 축하한다고 연락은 해줬지만 하루에 반이 지난 시간까지 미역국이나 케이크는 먹지도 못했다. 생일 별거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하루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단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행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솔라씨 생일인 거 깜빡했네. 남은 건 우리가 사진 찍어 보낼 테니 어서 집으로 가.”
한마디 덕분에 원래 일정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나도 어른이 다 됐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며 나도 이제 으~른이야 엣 헴! 의기양양했던 제 자신이 와장창 깨지는 하루였다. 나이만 먹은 어린아이 같았다. 올해 생일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변한 생일 초 개수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이제 정말 어른이 되어야 할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을 보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오늘 내가 겪었던 일들을 부모님도 겪었을 태고, 이보다 더 심한 일도 겪었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견뎌냈는지, 비법이라도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괜히 오늘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얘기하면 나보다 더 속상해하실 걸 알기에 ‘더 늦게 올 뻔했는데~ 다행히 예정대로 올 수 있었어’ 이렇게만 얘기했다. 
 9시가 가까워졌을 때 비록 미역국은 없었지만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할 수 있었고 오늘 하루를 보상받을 만큼 맛있는 케이크도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 날이었구나! 이제야 생일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요즘 나는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 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 때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 때 만나게 된다’는걸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두 번째 만남이 훨씬 좋기도 하다는 것도. 그 ‘좋음’은 슬픔을 동반한 좋음인 경우가 많지만 (p.141)


 올해 내 나이는 부모님에게 빗대어 생각해보면 나를 낳고 부모가 되고도 남을 나이였다.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다는 이유로 육아는 둘째치고 결혼마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금과 그때가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힘든 건 여전히 힘든 것. 그 이후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나보다 더 힘들었겠다. 그러니 힘내자. 나는 부양가족도 없고 내 한 몸 챙기면 되는 거니까! 훨씬 수월한 게 아닐까?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애써 힘내려는 것 같아 나 자신이 애처롭게 느껴지지만 이렇게라도 힘을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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