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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 Aug 30. 2020

양파 같은 사람

정세랑-시선으로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글쎄요를 말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일 때 그녀는 저는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어요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옆에서 지켜본 그녀의 모습은 좋고 싫음이 확실했고 그 이유도 갖고 있었다. 일을 할 때 계획 세우길 좋아했고 규칙과 상식을 사랑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입버릇처럼 항상 말했다. 
 그러니까 규칙과 상식은 나쁜 게 아니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필요가 있어.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계획적인 삶을 좋아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비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을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자신과 둘러싼 오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차가워 보여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게 내 본모습이 아니란 걸 알고 있잖아. 그거면 됐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될 수 없는 거야. 
 똑 부러지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녀가 원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녀의 본모습은 원하는 모습과 정반대였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오늘 내가 왜 그랬지 고민하며 잠들었다. 겹겹이 쌓인 양파처럼 작고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을 그와 반대의 모습으로 켜켜이 싸서 숨겨놨다. 가까워질수록 감쌌던 껍질을 하나씩 까며 본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날것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포장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피곤한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라고 했다. 


피곤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 알아? 저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생각이라도 하는 거야. 자기 최면같이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의 모습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거지. 그렇게 살다 보면 내 본모습이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을까?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예민함과 소심함은 일할 때 더욱 두드러졌다. 작은 실수에도 안절부절못하며 며칠을 우울해했고 항상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살폈다. 

문화산업의 모든 것은 한 끗 차이로 결정되는데, 그 한 끗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한 끗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 사람들도 어느새 지루하고 뻔한 걸 만들기도 하니, 한 끗 이란 것은 의외로 분실하기 쉽거나 유효기간이 있는 무엇에 가까운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한끗이 자신의 안쪽에 있었으면 했다. 힘을 잃지 않았으면 했다. p.247


언제는 그녀의 지인이 궁금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물어봤다. 그럼 진짜 본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야? 24시간 365일을 매 순간 숨긴 채 살아갈 수는 없잖아. 가족? 연인? 그러고 보니 너한테 연애 얘기는 거의 못 들은 것 같은데? 왜 안 만나는 거야? 이제 연애도 하고 결혼도 생각해야지 안 그래? 
 그녀와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항상 나오는 질문이었다.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사람들이 물어볼 때 그녀의 대답은 항상 나는 지금이 좋아라고 대답했다. 남의 얘기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혼자가 좋은지 더욱 캐묻고 싶어 했다.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한 지경에 이르자 그 이후 그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비혼 주의로 자신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를 향한 쓸데없는 걱정과 관심은 줄어들었다. 
 진짜 비혼 주의로 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다만 그럴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해. 나는 이미 나를 너무 잘 알아. 그래서 나처럼 예민하게 구는 사람은 혼자인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게 아닐까 생각했지. 누구를 만난다고 해서 그 사람 취향에 맞게 변하거나 그 사람을 내 취향에 맞게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 연애 다음은 결혼인데,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니 나도 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많아. 단순히 둘이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가족까지 한 가족이 되는 거잖아. 나는 우리 부모님한테도 잘 못하는데 상대방의 부모님한테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다 보면 혼자 사는 게 마음 편하다 결론 내리는데 요즘 들어 한 가지 두려운 게 생겼어. 할머니가 돼서도 혼자 있다면 그건 조금 우울할 것 같은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건 차차 걱정해도 되겠지?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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