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나는 지금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른에 대해 생각한다. 웃고 있을 때 보다 울고 있을 때, 만족스러울 때 보다 후회와 미련이 남을 때 어른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 세상에서 나이와 어른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할머니가 되어도 나는 떠올릴 것이다. 나는 지금 어른일까?
수능을 두 달 정도 앞둔 교실의 분위기는 싱숭생숭한 공기로 가득 찼다. 수시를 썼던 친구들의 합격이 이틀에 한 번 꼴로 발표됐고 당락에 따라 교실 안 공기는 바꼈다. 합격 소식이 들리면 나도 원서를 쓸걸 하루 종일 후회 했고, 불합격 소식이 들리면 안 쓰길 잘했다고 안심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과는 수시 전형이 별로 없었다. 수시를 쓸 생각이었다면 1학년 때부터 내신 관리를 해야 했었다. 내신 다음 관문은 실기시험. 수시에도 대부분 실기시험이 따로 있었고, 내신과 실기시험을 둘 다 잘 해내는 건 굉장히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일이다.
미술학원을 다니면 다른 친구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동안 월~금 매일을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 공부를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굉장히 적은 편인데, 이 안에서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시험기간이라 부르는 시험이 시작되기 1~2주 전에는 미술학원을 나가지 않는다. 이 때 시험공부를 하라고 학원에서 배려(?)를 해주는데 바짝 벼락치기로 1~2주 안에 성적이 오를 수 있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수시를 통해 뽑는 학과 정원은 굉장히 적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간, 내 상황을 고려할 때 수시라는 카드는 나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수시를 쓰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걸 보고 불안감이 커졌다. 그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19년 동안 수없이 많은 선택을 했다. 수능 시험이 있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내가 내린 결정들이 좋은 결정이었는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후회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후회하는 마음은 새카만 불안감과 슬픔으로 번졌다.
울지마 이미 지난 일이야. 삶의 반칙선위에 점일 뿐이야.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뿐야. 샵 -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지금 내가 겪는 일들은 인생을 긴 선으로 봤을 때 아주 작은 점에 해당한다. 당장은 아주 큰 웅덩이처럼 느껴져서 그곳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작은 점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첫 부분을 계속 들으며 생각했다.
어른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정답이 없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19살에도 지금도 어른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택을 했지만 19살의 선택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던 것은 지금 이 선택이 앞으로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 선택은 내가 했기 때문에 다른 누구를 탓 할 수 없다는 무게감이었다.
산을 넘으니 더 큰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19살 때 내렸던 선택보다 더 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매번 찾아왔다. 앞으로도 수 많은 선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항상 옳은 방향으로 답을 내리면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나간 일들에 대해 최선의 선택을 했고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그 과정 또한 책임이 아닐까.
이렇게 작은 점들이 모여 삶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PMX0osy_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