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ar Aug 05. 2022

그냥 책 읽기

한국 사회에서 독서가 갖고 있는 이미지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던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인터넷 연결은 거추장스럽고 많이 불편했다. 인터넷을 하면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계속 통화 중인 친구네 집에 친구를 찾으러 직접 간 적도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책이 아주 많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각자를 위한 서재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과 연간구독 중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가 가득 차 있었다. 반나절 넘게 텔레비전을 보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가 지겨워지면 딱히 다른 즐거운 놀이를 찾지 못해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읽었다.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내용이라 그림 위주로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불편한 인터넷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전화를 하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속도도 빨라졌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다양한 전자기기의 등장으로 집에서만 할 수 있던 접근성 문제도 해결되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책 읽을 시간에 스마트폰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나 역시 독서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집 밖에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졌고 각 종 영상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세상에 살면서 생긴 결과다. 결정적으로 내 손에는 언제나 항상 스마트폰이 있다. 쉽고 빠르게 자극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세상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책을 읽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책이 재미가 없어서 읽는 것을 그만둔 게 아니라 더 재미있는 게 생겼을 뿐 책에 대한 흥미는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쉽게 책을 접했던 경험 때문에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사람들은 책을 ‘지식’과 관련된 어려운 이미지로 떠올렸고 나는 책을 ‘즐거움’의 가벼운 이미지로 분류한다. 책의 다양한 장르 중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소설책을 많이 읽었고 즐겁고 가볍게 읽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큰 맥락을 이해하는데 집중했다. 소재, 인물들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세세하게 따지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영화에도 작품성이 높은 예술 영화, 흥미 위주의 킬링 타임용 영화가 있듯이 책도 비슷한 분류를 할 수 있다. 킬링 타임용 영화가 예술 영화보다 작품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추구하는 재미 위주의 독서 방법도 나쁘지 않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적응이 끝날 때쯤 다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혼자 읽는다면 책 한 권을 다 읽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완독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책을 읽지 못한다면 유료 독서모임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유료 독서모임이 올해로 벌써 3년째다. 


주말에 유료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가? 사람들과 ‘취미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굳이 주말에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읽는, 자기 계발에 엄청 열심인 사람으로 포장되었다. 직장 상사와 업무 관련 갈등이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솔라님은 주말에 독서모임까지 하는 걸 보면 자기 계발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일은 왜 이렇게 하시는 거죠?” 
말을 듣고 업무 외적인 시간에 대해 나를 평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에게 ‘책 읽기’는 어떤 의미인지 정리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 상사분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는 쪽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사건을 겪고 나니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어디까지 나의 사생활을 얘기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유독 ~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도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심해졌다.

 똑같은 것을 좋아해도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는 다 다르다. 단어가 갖는 이미지나 느낌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뜻이 있는 사전적 의미와 다른 주관적인 거라 모두가 같을 수 없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어딘가에 또 있을 것이다. 책 읽기에 대한 이미지가 다양해져서 나 같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게 뭐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