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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 Aug 15. 2022

한국에서는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다

한글을 바라보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생각

(이 글에 사용된 ‘폰트’ 단어는 유사어로 타이포그래피, 서체, 글씨, 글꼴이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타이포그래피라는 용어를 ‘폰트’로 대체하여 사용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폰트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화려한 그래픽을 만들어내는 스킬이 디자인을 완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사회에 나와 디자이너로 생활해보니 그래픽을 어떤 스타일로 표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폰트가 디자인의 전반적인 느낌을 쉽고 빠르게 바꿀 수 있는 요소임을 크게 느끼고 있다. 보통 그래픽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폰트를 찾아 바꾸는 것이 더 시간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너무나 부족한 시간을 주고 항상 3개 이상의 디자인 시안을 원하는 상사를 만났을 때 내가 주로 썼던 방법이다. 그 상사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님에도 유독 폰트에 집착했다. 명확히 어떤 스타일로 바꿔달라고 말을 하지 않고 “이거 폰트 바꿔 주세요”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스타일을 제비뽑기 하듯 여러 가지 폰트를 대입하다 보니 경험이 쌓여 선호하는 스타일을 알게 되고 자주 사용하는 폰트가 조금씩 눈에 익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을 폰트만 바꾸느라 시간을 보내면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때 경험을 통해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폰트들을 외울 수 있게 되었고 내 취향의 폰트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출처 : 산돌구름 / 격동고딕
출처 : 산돌구름 / 오동통


당시 제일 많이 사용했던 폰트는 ‘격동고딕’, ‘오동통’으로 상사는 획이 두꺼운 스타일의 폰트를 선호했다. 격동고딕은 주목성과 가독성이 좋아 정보전달에 탁월한 폰트다. 대신 제목으로 썼을 때 효과를 볼 수 있고, 본문용으로 쓰기에는 글씨 크기에 따라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거리에 있는 현수막이나 선거시즌 정치 벽보를 보면 격동고딕이 많이 눈에 보였다. 글씨만 보고 폰트 이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는 내심 뿌듯했다. 그전까지 나는 폰트에 대해 특별한 취향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깔끔한 고딕 계열의 폰트를 좋아했고 손글씨로 불리는 캘리그래피 스타일의 폰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출처 : 산돌구름 / 호요요

그러다 운명처럼 내 마음에 드는 폰트를 찾았다. 장식 요소를 배제하여 깔끔하지만 개별 자음의 폭이 달라 고딕 폰트가 주는 심심함을 없앴다. 예능에서 자막으로도 많이 쓰이는 걸 보고 쉽게 폰트의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한글 폰트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세련됨, 유행하는, 고급스러움의 키워드를 표현하는 작업을 할 경우 한글 폰트를 찾는 것보다 영문 폰트에 먼저 손이 간다.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디자인이 사용되는 환경이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한글을 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스타 유명 카페로 종종 올라오는 게시물에도 한글 상호명이나 간판은 거의 없다.


 몇 달 전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새롭게 바뀐 스타벅스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 스타벅스의 미국 지분이 빠지고 신세계가 그 지분을 다 인수해서 한국의 스타벅스는 미국의 스타벅스와는 다른 독자적인 회사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그 이후에 나온 새 브랜드 캠페인으로 얘기가 이어졌다.
새 캠페인의 핵심 카피는 ‘좋아하는 걸 좋아해’로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에서 그것이 가능한 곳에서’ 서브 카피와 함께 사용했다.

스타벅스는 주로 영문 카피라이트를 위주로 ‘스타벅스 다움’을 표현했는데 한글로 바뀌면서 스타벅스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가 사라졌다는 게 지인들의 의견이었다. 캠페인을 노출하는 측면에서도 매장 외부 전면에 시트지로 표현하는 방법이 기존 스타벅스 이미지와는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었을 때 흘려 들었던 내용을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니 대중들이 말하는 의견도 지인들의 의견과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는데 한글로 카피라이트를 구성한 점이 나쁘지 않았다. 카피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불분명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에 있고 사용자의 대부분이 한국인인 이상 한글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찬성한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고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스타벅스를 예시로 들었을 뿐, 이 외에도 각종 패키지와 홍보 포스터에서 한글을 배제하고 영어로만 디자인된 상품이 굉장히 많다. 그런 상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예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뒤 이어 한글로 디자인을 했다면 이런 느낌을 만들기 어려웠을까?라는 아쉬움이 떠오른다.
막상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고 세련된 느낌의 이미지를 제작해야 할 때 손이 먼저 가는 건 영문 폰트다. 생각은 생각일 뿐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 한글만으로 세련된, 전통적인 느낌이 아닌 현대의 트렌디한 감성을 담을 수 있는 디자인 작업을 력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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