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안목 한 끗 차이에서 비롯된 다른 결과
청문회가 있던 날 실시간 검색어에는 ‘ㅇㅇㅇ 립밤’이 인기 검색어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청문회 내용이 궁금하지 않았고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발랐던 립밤이 무엇인지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유명 기업의 총수가 쓰는 제품은 얼마나 좋은 제품일지,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사람들의 호기심은 증폭되었고 잠깐 나온 화면으로 해당 제품이 어떤 제품인지 찾아내는 집단지성을 발휘했다. 밝혀진 제품은 의외로 고가의 제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 립밤이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용하는 사람의 ‘안목’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돈과 관련해서 아쉬울 것 없이 보고, 듣고, 먹고 경험을 하는 사람이 선택한 제품이라니, 그의 ‘안목’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제품의 보습력? 향기? 디자인? 안목과 관련된 궁금증이 실시간 검색어를 립밤으로 만들었다.
“나는 돈 많은 사람들의 돈이 부럽지가 않아. 그들의 안목이 부러워.”
책인지 영화인지 아니면 친구가 한 말인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이 얘기를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목은 개인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생기는 영역이 아니다. 충분히 좋은 것을 많이 경험해봐야 쌓이는 영역이다. 사전에서 취향과 안목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정의된다.
취향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안목 :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두 단어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보면 취향은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분류될 수 있고 사람마다 다른 느낌, 안목은 개인의 선호도와 상관없이 누가 봐도 좋은 것을 분별해내는 의미를 포함한다.
한 때 많이 쓰였던 ‘취향 존중’이라는 단어도 취향은 개인의 선호도와 관련된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간섭이 필요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취향과 안목 둘 다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취향은 어떤 경험이든 상관없이 그 경험이 나와 맞는가에 집중한다면 안목을 쌓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양질의 경험을 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파악하고 나의 관점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 많이 가는 맛집, 많이 보는 책 등을 보려고 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나온 행동이다.
좋은 안목에 대한 갈망은 디자인 일을 할 때 더욱 크게 느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개인의 취향을 아예 배제하기가 어렵다. 정해진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컨셉을 정하고 어떤 스타일로 표현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1순위는 프로젝트의 목적을 고려하고, 큰 방향성이 정해지면 그 뒤에 있는 2순위, 3순위 목표에서는 내 취향이 조금씩은 섞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 취향이 대중이 원하는 안목과 다른 방향을 가질 때 발생한다. 좋은 디자인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큰 갈래를 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길을 좁혀 갈수록 내 취향과 대중이 원하는 안목 사이에서 고민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디자인 영역에서 좋은 안목을 갖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자주 듣는 답변은 ‘많이 보면 된다’다. 좋은 경험을 통해 안목을 쌓아나가는 관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양질의 경험이 좋은 안목을 길러준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디자인에서 좋은 안목은 많이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많이 보고 좋은 안목에 대한 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표현해내는 기술적인 능력도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이 본다는 기준도 애매하고 보고 있는 대상이 과연 좋은 기준에 속하는지도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결국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업에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일은 좋은 안목을 갖기 위해 어떻게 방법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 답을 내리는 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