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이해하면 대화가 편해질까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 중 많은 것들은 '얘기를 하지 않아서'인 줄 알았다. 연인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로 시작된다. 매일 저녁 뉴스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큰 목소리로 서로를 깎아내리며 싸우고 대화 흉내를 내고 있다.
눈치가 빨라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기에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는 서로 다른 두 점이 하나의 점으로 합쳐지거나 거리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위해 상대방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인지 먼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주제를 대화로 해결할 수 없다. 서로의 생각이 첨예하게 갈리는 주제 예를 들면 정치나 종교 같은 주제는 처음 만난 사람, 가족 사이에도 쉽게 얘기를 꺼내기 어렵다. 민감하고 어려울수록 더 많이 자주 사람들과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면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가 완전히 겹쳐지지는 않아도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몇 달 동안 일상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어린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우리 사이의 공통점이 적어서였을까? 몇몇 사람들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누가 봐도 대화하기 힘든 주제를 자꾸 모두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동의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 그렇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동의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면 다음 스텝은 100분 토론과 흡사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았다. 가치관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넘어가면 되는데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행동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사람에 대한 이해도 힘들어졌다.
역시 사람들이 피하는 것은 이유가 있구나! 나의 믿음이 깨졌다.
MBTI 유행은 돌고 돌아 T와 F에 대한 논쟁으로 넘어왔다. 완벽히 T 성향인 나는 가끔 SNS에 뜨는 논쟁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T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실에 대한 인과관계일 뿐 상황에 대해 공감을 못 하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하소연할 때 얘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데 어쩌라는 거지? 그냥 이렇게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 우습게도 내가 힘든 상황이 되면 T성향은 완벽하게 역전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제삼자에게 가서 나의 힘듦을 하염없이 털어놓다가 감정이 몸을 지배하는 시간이 끝나고 이성의 시간이 돌아오면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 든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한 거 아니야? 무슨 짓을 한 거지...!?
해결할 수 없는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더라도 점점 감정이 전이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웬만큼 힘든 일이 아니면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감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상대방을 이해해서, 소중한 관계라고 생각해서 나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하고 싶지 않다.
대화의 목표를 '해결'에 방점을 찍어서 생기는 고민같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좋은 대화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분명 존재할 텐데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