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질서와 불행한 진실, 무엇을 볼까

희곡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with Audio

by 도한솔 I Solar


이그나시오, 첫 등장



2023년에 친구의 초대로 뮤지컬을 한번 보고 난 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작품. 어제 헬렌켈러와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토대로 쓰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도서관에서 읽어봤다. 그리고 읽다가 이맛살이 순간 찌푸려졌고 딱 한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하듯 스쳐 지나갔다.


"아, 이 작품 많이 위험하다."


내가 이 작품을 맡은 배우였다면 절대 다음 시즌은 할 수가 없겠다. 이 작품 전후로 내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달까.




In the Burning Darkness. 말 그대로 어둠 속을 살아가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모여있는 '돈 파블로 맹인학교'. 이 안에서 학생들은 장애를 잊고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린다. 이곳의 이념인 '철의 정신'의 대표이자 리더인 까를로스는 중심을 잡는 기둥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어느 날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신입생 '이그나시오'가 입학하며 균열이 시작된다. 이그나시오는 학생들이 애써 외면하던 현실과 한계를 직시하게 만들고, 이들의 안전한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버린다.


​모든 건 이 질문에서부터 뿌리 뻗게 된다.


“행복한 무지는 옳은가,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알아야 하는가?”


"존재한다는 건 뭐지?"

그건 괜찮다고 믿는 거야.

아냐, 아프더라도 보는 거야.


"행복이란 무엇이지?"

불행을 인식하지 않으면 불행은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지금 행복해.

거짓말, 고통을 외면하는 행복은 없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봐야 해.


"본다는 건 뭐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안전한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

우린 볼 수 있음을 꿈꿔야 해. 보지 못한다는 건 고통이야.


공동체는 까를로스를 사랑하고 이그나시오를 배제하려 한다. 그가 틀려서가 아니라, 모두가 숨기고 싶어 했던 진실을 그가 너무나 똑똑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원래, '빛'을 외면하지 못하는 법. 학생들은 이그나시오에게 동요하고, 까를로스의 여자친구인 후아나마저도 매료되어, 이그나시오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다. 완벽하고 안정적인 커플로서의 자신이 아닌, '장님'이라는 결핍 어린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이그나시오의 진정성에서 시작된 사랑이다.


를로스의 모멸감은 여기서 폭발한다. 자신이 지켜오던 '질서'라는 구조가 사실은 나조차도 알고 있었던 '진실'에게 외면받았다는 그 배신 아닌 배신감에서.





사실 나는 2023년 당시 공연을 봤을 때 당시는 배우들의 철저한 연기에 감탄하면서도 러닝타임을 달릴수록 좀 답답했다. (사실 컨디션도 안 좋아서 1막 후반부에 5분 정도 졸았는데, 눈 떠보니까 까를로스랑 이그나시오가 멱살 잡고 싸우고 있더라.) 지루해서가 아니라 계속 진공 상태에서 공연을 보는 기분이었다 해야 하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뭐 넘버 이런 건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내 기억에는 후아나와 다른 학생들이 까를로스의 눈치를 너무 보느라고 숨도 크게 못 들이쉬는 장면이 1막 내리 이어졌던 걸로 기억난다.


​내가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중도 탈주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폭력의 순환을 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어떤 타협이나 카타르시스도 배제된 느낌. 답의 방향은 정해져 있고, 이해는 가는데 내가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비극 장치. 왜 수작이라 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난 못 견디겠는 작품.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도 좀 그런 느낌이거든. 그래서 배우 입장에서 보면 "참 힘들겠다, 위험하다" 싶은 거다. '안 보이는 연기'라는 기술적인 고충은 둘째 치고, 이 숨 막히는 대본과 몇 개월을 살며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다 보면 인간 자체가 깎여나갈 것 같다. 요구하는 게 참 많은 작품이다. (물론 검색해 보니까 초연 이어서 재연도 다시 하시는 분은 또 하시지만....)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이그나시오 첫 등장


친구가 내게 "언니, 이그나시오 해!"라고 했을 때 (내 사진 가지고 표지에 있는 포스터도 만들어줌!), "시켜줘야 하지(ㅎ)"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내가 이 배역을 맡는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철저한 분석이나 결론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그냥 말 그대로 '볼' 것(Attention) 같다.


음, ​이 어둠을, 이 위선을, 눈 뜬 사람들이 비웃는 나를, 나를 동정하는 아버지를, 같은 장님인 후아나를, 그리고 사실은 누구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까를로스를.


다시 생각해도 이그나시오는 그냥 그렇게 말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 진실을 낮추면 자기 존재가 무너지니까, 타협이라는 게 곧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니까. 아마 이그나시오는 이 학교를 나갔다 하더라도 또다시 동일한 사회를 만났을 거야.


그래서 비극은 개인적인 슬픈 일 이상의 구조적 필연이고, 그 과정이 한 맹인 학교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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