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계가 다른 존재와 함께 사는 일상
가슴께가 무겁다. 아주 묵직하지는 않은 걸 보니 이건 분명 낭냥이다. 눈을 떠보니 역시나다. 얼굴을 내 몸에 부비며 울어대고 있다. 낭냥이의 울음소리는 사이렌 같다. 애앵ㅡ 하고 길게 운다. 살아있는 모닝콜이다.
어젯밤에는 새벽 2시까지 일을 했다. 오늘은 꼭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휴식을 갖겠다던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낭냥이가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내 얼굴에 들이대며 당장 일어나라고 위협하니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자, 사냥 가자 사냥!이라고 말하며 장난감을 가지러 간다. 낭냥이는 타다닥타다닥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나를 쫓아온다.
나의 동거인이 둘째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의 첫마디는 미쳤어?였다. 한 마리 키우기도 좁은 집이었다. 화장실에 스크래쳐에 숨숨집까지 고양이 용품 때문에 우리의 작업실은 호냥이 (첫째 고양이의 이름)방으로 되어버린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냥이는 겁이 많고 낯을 가리는 녀석이다. 새로운 고양이가 등장하면 친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나는 계속 반대했으나, 동거인은 2주만 데리고 있자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영 마뜩지 않았지만 결국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동장 안에서 연신 야옹거리던 아기 고양이를 기억한다. 호박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도, 손바닥만한 몸집도, 뽀송뽀송한 하얀 털도. 고양이라기보다는 솜뭉치 같네, 아기 고양이는 이렇게 작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은 뭘로 지을까?라고 동거인이 묻자, 나는 어차피 돌려보낼 거니까 니맘대로 지으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러자 동거인은 ‘낭만 고양이’의 줄임말로 ‘낭냥이’로 짓자며 눈치 없이 해맑게 말했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속으로만 생각한 걸 후회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낭냥이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살짝 부끄럽다(동거인에게는 비밀이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낭냥이는 일주일 만에 우리집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낭냥이는 무척이나 똥꼬발랄한 성격이었다. 2주의 약속 기간은 금세 없던 일처럼 휘발되었다. 낭냥이는 호냥이와 부둥켜안고 자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남매 케미를 보여줬다. 우리는 남매를 키우는 부모처럼 둘 사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사진첩에는 이들의 사진과 영상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낭냥이는 신나게 사냥을 마치고 난 뒤, 간식까지 먹고 배 뜨시게 누워있다. 상팔자다. 나도 집고양이로 태어날 걸 그랬네 라고 생각하며 낭냥이의 털을 쓰다듬는다. 낭냥이는 기분이 좋은지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는 것처럼 보글보글 댄다. 나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어본다.
이렇게 작은 몸인데 심장이 뛰고, 생명력 넘치게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낭냥이는 내가 두렵지 않을까? 어떻게 제 몸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존재에게 이토록 무구한 신뢰를 줄 수 있는 걸까. 나에 비해 낭냥이는 연약하다. 내가 밥을 주지 않는다면 낭냥이는 살아갈 수 없을 거다. 낭냥이의 얼굴은 입을 크게 벌리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맣다(이걸 아는 이유는 동거인이 실제로 낭냥이를 쭈압쭈압 한입에 먹으려 하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낭냥이를 한 손으로 번쩍 들 수도 있다.
낭냥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새하얗던 무늬는 점점 울긋불긋해지고, 몸도 길쭉해져서 기지개를 하면 호냥이와 비슷하다. 낭냥이와 나의 시계는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 체감된다.
앞으로 낭냥이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언젠가는 한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커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낭냥이는 언제나 나에게 기대어 살 것이고, 나는 그 무게를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몸집이 얼마나 커지든 언제나 나에게 낭냥이는 보드라운 솜뭉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