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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솔아 Sep 18. 2023

소년은 어떻게 아저씨가 되는가

호냥이의 중성화수술


    여기,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 고양이는 눈 뜬 채로 잠드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과는 다르게 흐른다. 생후 3년까지는 빠르게 성장하고, 그 후 1년은 사람의 4년과 같은 속도로 자란다.


    1살 = 15살

    2살 = 24살

    3살 = 28살

    4살 = 32살

     ...


    이렇게 대입할  있다.  계산법에 따르면 이제 6살인 나의 고양이, 호냥이는 고양이 나이로는 40살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중년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호냥이는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명백한 돼냥이인 탓에, 3 때에도 이미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너무 살이  것이 아니냐며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호냥이가 살이  것은 '중성화 수술' 이후였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 같은 남자라 그런지 남자친구는 호냥이의 심정을 퍼센트 공감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어느날 갑자기 고자가 된다면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살아가겠냐, 나 같아도 무기력해서 먹고 자는 일만 반복하겠다고 말이다.


    중성화 수술은 고양이에게 어떤 의미일까. 동물에게 '번식'이라는 본능적인 에너지를 없애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상상해본다. 가장 큰 삶의 목적을 상실한다면 무엇으로 살아갈까. 그때부터 호냥이를 볼 때마다 중년의 아저씨가 겹쳐 보였다. 은퇴 후 런닝 셔츠 차림으로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아저씨.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호냥이는 좋아하던 사냥조차 귀찮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냥감을 흔들어도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손만 까딱거리다가 이내 몸을 뒤집어버린다. 벌써부터 호냥이의 노화가 시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한동안 나의 고양이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살폈다.


    둘째 고양이 낭냥이와 같이 살게 된 이후로 호냥이의 하루는 크게 바뀌었다. 활발한 낭냥이가 이리저리 까불며 장난을 치면, 호냥이도 장단을 맞춰 함께 뛰논다. 그때만큼은 호냥이는 아저씨가 아니라 소년이다. 해질녘까지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소년이 되었다가, 여름 바닷가에서 힘껏 물장구를 치는 소년도 된다. 날렵하고 생기 넘친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호냥이는  살아간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다.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금세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오늘도 호냥이는 츄르를 뜯는 소리에 와다다 달려오고, 포근한 이불 위를 뒹굴다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잔.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낭냥이와 서로를 그루밍해주며 단장도 한다.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나의 고양이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앞에 놓인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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