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쉼에도 다짐이 필요하다

by 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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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수가 된 지 일주일째. 벌써 달력의 첫 줄이 사라졌다. 백수 첫날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부였다. 퇴사했다고 게을러지기도 싫고 마냥 놀고 싶지도 않았다. 일부러 출근할 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고 빡빡한 계획을 세워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자 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직장을 다닐 때만큼 몸이 지쳐있었다. 그래도 나름 성실한 내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하루하루 부지런히 움직였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어제는 전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나에게 반가운 얼굴로 물어봤다.

“요즘 어떻게 지내?”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1순위이다. 직장인의 입장에서 퇴사 직후의 짜릿한 일상이 궁금한 것이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일주일은 그들의 예상과 달랐다.

“저 요즘도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고, 일어나서 공부 조금 하다가 청소하고 운동해요. 저녁에는 좀 쉬고.”

퇴사 후 놀고만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은 마음에, 굳이 바쁜 일상을 자랑처럼 말한다. 그러면 동료들은 놀라워하며 말했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점심 식사 후 집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를 폈다. 며칠간의 피로가 쌓인 탓인지, 점심 후의 식곤증이 또 다시 도진 것인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졸음에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나는 이번에도 조금만 쉬자며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평소 같으면 잠들지 못하고 눈만 붙이곤 했는데, 어제는 달랐다. 목이 뒤로 넘어갈 정도로 한순간 깊게 잠들었던 것이다. 푹 잘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임을 감지하고 바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속으로 문득 내뱉은 말에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행복하다.’ 한여름 대낮, 샤워 후 건조한 몸에 선풍기 바람은 시원하다. 전날 청소한 집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밖은 고요하다. 창문 밖에서 비추는 햇볕은 거슬리기보다 포근하다. 정말 그랬다. 이렇게 침대에 기분 좋게 누워 평온한 마음으로 낮잠을 자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졸음과 싸우지 않고 바로 나의 몸을 내어주는 그 기분 좋음. 항상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걱정도 그 순간만큼은 졸음에 패배한 채였다. 정말 오래간만의 짧지만 강렬한 휴식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나의 부지런한 일상을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불안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다. 쉴 때조차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인 것 같다는 착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받기 전의 짧은 기간조차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던 나였다.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오늘 개운하게 낮잠을 자고 생각했다.

아, 이번엔 진짜 쉬어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잘 쉬어보기로 다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들에 죄책감 느끼지 말기로. 휴식에 사용하는 돈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기로. 쉼에도 다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렇게 공부 계획은 먼지처럼 사라졌지만, 다음달 8월, 끝내주게 쉬기 위한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기대된다. 설레는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어떻게 보면 가장 불안정한 시기인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의외로 무덤덤하다. 가끔은 설레기까지 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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