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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Apr 13. 2023

4월의 홍성역

어느 날 시를 썼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시를 썼을까 고민하다 

나는 글을 펼쳐보기로 했다.




익산발 무궁화호를 기다리고 있다. 용산역은 언제나 떠나려는 사람들 틈에서 돌아온 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다. 시간을 지키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 마저 이곳은 이미 와서 저마다 잠시의 쉼을 한다. 어쩌면 조급하다. 기차를 놓치면 일찍 온 사실이 무색하기 때문이다.


나도 내남없이 가장 먼저 화장실을 찾아 다녀오고, 그래도 조금의 시간이 나면 내 배를 살짝 움찔하게 신호를 준다. 그런 다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 한 통 사고  비로소 안심한다.

그제야 발걸음이 플랫폼을 향해 나간다. 나의 표를 휴대폰으로 확인한 다음 무심한 듯 나의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내가 미래를 살아갈 곳, 홍성으로 간다.


무궁화 기차는 느리듯 빠르게 모든 역을 경유하고, 잠시 멈출 때마다 다른 봄들이 조금씩 기차 안까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나른한 긴장을 잠시 놓고 잠이 살포시 들었다. 어느덧 온양온천을 지나고 있다. 잠시 잤는데, 이불에서 자는 잠보다 더 꿀잠을 잔 듯 개운하다.


바람이 들어왔다. 나의 텅 빈 혼은 아, 사람들이 나가는구나. 무심히 그 순간을 보내고 나면, 이 시간이 바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찰나였음을 느낀다.

역은 다시 홍성역에 닿았다. 내려야 한다. 여기서 못 내리면 나는, 다시 헤맬 것 같다. 살아오면서 내리지 못하고 지나친 순간들이, 그리고 그 대가로 공짜 없는 인생을 살았던 내가 홍성역에서 잠시 허공에 던져지게 된다면, 하염없이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홍성에 있는 집터로 향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이 시간이 오직 기쁨만을 주지는 않는다. 나의 시간 안에는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시간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낯선 가방들을 무심히 따라갔다. 거의 멍한 상태다. 아무런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사람들이 사라진 그날 이후 나는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허망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 당시 대장암 수술 후 요양을 하고 있었던 나는, 나의 목숨, 나의 생명에 대한 끈질긴 욕망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의 연연함이 참으로 낯설고 염치없는 것임을 느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날 이후, 국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되씹게 되었다. 어쩌면, 그날부터 나는 나의 목숨에 내 아픔에 연연하지 않았다. 나의 몸과 정신이 비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었던 그 시절, 비틀거리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홍성역으로 나왔다. 정문 앞을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벚꽃무리 바람에 날리는 꽃눈을 보면서 오늘 같은 날이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미래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홍성에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냉혹하고 잔인한 것인지 산자는 산다.

매서운 이 말 한마디에 나는 휘청거린다.


내 앞에 낯선 가방들이 지나가듯, 모든 사실들은 그냥 지나간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이다. 과연 나는 그래도 되는가 말이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생각난 것은 아니다. 가끔씩 아름다운 것을 마주치지 말자고 바랬을 뿐, 죄책감이 올라온 건 아니다.


다음 기차가 정차하지 않기를 잠시 꼬리칸의 불안한 안녕을 고할 뿐이다.

도착한 곳에서 나의 봄이 속절없이 아름다운 것을 들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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