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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Oct 23. 2023

깻잎과 풀

 


흙을 고르고 골랐다. 

밭의 무상을 알 리 없는 나는 멍하니, 하늘 한번 밭 한번 쳐다보면서 이 땅이 왜 나에게로 왔을까에 멈추고 있었지만, 

남편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늘처럼 넓게만 보였던 흙을 뒤집고, 땅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앞집 농부의 도움도 기꺼이 받아 트랙터로 밭을 갈고, 갈았다. 고랑이 생기고 유기질소가 뿌려졌다. 그러는 사이 다섯 고랑의 깻잎 밭이 만들어졌다. 땅이 밭이고 밭에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막막하고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먼저 땅과 맞닿았다. 해가 뜨겁고, 무더운 날이 계속되었지만, 자동으로 구멍을 뚫으면서 물을 주는 기계의 힘을 빌려 모종을 심었다. 아주 조심스러운 깻잎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텃밭 일꾼을 생뚱맞게 보던 깻잎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날을 여린 몸으로 받고 있었다. 매일매일 그들은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이겨냈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여린 들깨는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장맛비를 이겼지만, 실하지 않았다. 




솔바람사진




세상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은 들깨뿐만이 아니었다. 옆집과 경계를 감싸고 있었던, 트랙터의 힘을 빌리지 못했던 곳에 풀이 있었다. 풀씨의 생명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네 삶처럼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김수영 시인 -풀이 눕는다 중)처럼 풀이 그 경계를 넘었다. 그리고 마음껏 자기 씨를 뿌렸으며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기 시작했다. 


나는, 저 풀이 좋았다. 내 삶처럼 자라게 놔두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돌을 줍고, 풀을 뽑아 깻잎 뿌리 근처에 눕혔다. 혹시나 풀이 멀칭 효과를 줄 것 같았다. 아니면, 이미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비가 오지 않는 날 더위가 지나가는 오후 6시경에 나가 1시간 정도의 풀멍을 한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오리방석을 다리 사이에 끼워 앉아서 무아지경으로 풀에 다가간다.


너무 뜨거워서, 아니면 비가 너무 쏟아져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살짝 몸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어서 밭으로 나가 저 무성한 풀들을 뽑아 눕혀야지 나의 깻잎에서 가을이 지나면 들기름을 수확하고 싶다.


비가 오면 모든 초록은 흔들린다. 풀도 깻잎도 그 몸으로 받아 내기 위해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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