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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Apr 16. 2023

마침내, 살만하니

인생, 참


3.


시어머니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알기에 나는 산청으로 귀촌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결혼할 때부터 남편과 나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득된 듯싶다.

시골에서 터를 잡고 대대손손 살아온 시댁은 그 집안의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남아 있다는 이유로 며느리인 어머니의 삶은 본인조차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셨다.


나도 그렇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인생의 나란 존재보다 더 애틋하게, 한순간에 우주가 바뀌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생긴 우주는 순식간에 무상무념의 이념조차 잡아먹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나름대로 성장하였고, 

서울의 바쁜 시간만큼 결혼이 가족이라는 소박한 자기편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삶도 어김없이 인생이라는 곳, 어느 지점에서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생존을 위한 일터에서의 치열한 시간과 새로운 우주의 작은 행성 둘이 서로 다르게 시간이라는 공간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 나의 치열하다 못해, 아름다웠던 그 시간의 끝에 결국, 한 방 맞았다. 인생한테, 쉬지도 돌보지도 않았던 '나'의 몸과 정신이 결국에는 아웃시켰다. 이제 그만 쉬라고, 그러지 않으면 너의 남은 인생은 여기가 끝일 것이라고 말이다.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49살이 되던 그때 결국 나는 쓰러졌다. 피골이 상접해져 갔고 위가 아팠고, 겔포스를 달고 살았다. 위통(가장 큰 오해, 나는 대장암이었다.)이 오면 쓰러질 듯이 뒹굴었지만, 그것이 생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1여 년을 버티다. 결국은 쓰러졌다.


죽음의 문턱을 갔다 온 나는 죽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을 감사했다. 사람은 아프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더구나, 아픈 것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병이라면 어느 순간, '나 혼자'임이 명백해지는 순간이 있다.


결국, 나는 죽음 앞에서 결정해야 했다.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한적한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가족과 함께 지낼 것인지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나는 가족을 잃어버릴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움켜쥐고 매달렸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으니, 나에게 선택권은 오로지 '아이'였다. 큰아이도 겨우 중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중학생도 어린 나이인데, 큰아이는 큰아이라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놨던 것이 많이 미안하다.


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고, 가족을 선택했던 순간이었다.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가장 소중한 것이 먼저 다가옴을 느낀다. 하늘은 추웠고, 땅은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듯 숨도 쉴 구멍 하나 없었던 날이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투병은 오랜 시간 나를 도덕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나는 도시에서 암을 치유하였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시골살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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