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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May 21. 2023

집을 지을 차례다

봄담을 위한 칸타빌레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달려온 세월이 놀라울 정도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다. 왜, 그렇게까지 달렸는지 모른다. 신이 그랬는지, 내 의지가 그랬는지. 여하튼 집을 짓기 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홍성에 있는 땅을 샀고, 그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기로 했다. 양쪽 집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정리해야 한다.

우리 집터는 150여 평을 대지로 전환했다. 그리고 도로를 공동소유로 냈으며, 300여 평은 밭이다.  농지원부(농지대장 :농지의 소유나 실태를 파악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작성하는 장부)를 내기 위해 300여 평이 필요하다.



시골살이를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시골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결론은 모르겠다. 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 이 말처럼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말은 없지만 - 나는 농지대장부를 받기 위해 300여 평의 밭도 만들고 귀농귀촌 대학도 다녔다. 매주 토요일마다 지하철을 두 번쯤 갈아타고 원흥역에 내리면 농협대학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시간을 제때 맞추어 타야 제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밭에 정식定植(온상이나 묘상에서 기른 모를 밭에 정식으로 옮겨 심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늦가을쯤 밭에서 김장 배추와 무를 거둬들일 때까지 수업은 지속된다. 100여 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귀촌이나 귀농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자 배우러 오는 곳이다. 

거의 일 년을 나의 생활 중심에 땅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나마 고구마 줄기를 뜯어가는 재미는 쏠쏠했다. 7평밖에 안 되는 텃밭인데 끊임없이 일이 있었다. 이곳은 유기농법이나 자연농법으로 밭을 가꾸지 않는다. 교수님과 주변 동기들이 짓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흉내만 낼 뿐이었다. 결국, 땅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직접 땅을 일구어내는 작업에는 소질도 흥도 나지 않았다.


나의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았다. 이 또한 욕심이다.


해가 뉘엿거릴 때쯤 집으로 돌아온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늘 고민한다. 이 수업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 그래도 수료식까지 다녔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선택한 것이니 중간에 포기하게 되면 집도 짓지 못할 것 같다는 무언의 책임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시골살이는, 농사짓기가 아니라 시골에서 살다가 맞다. 밭일은 텃밭 정도를 꿈꾸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보살피면서 살아가고 싶다.

귀농귀촌 대학의 결과물은 '어떻게'에 방점을 두지 않았고,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를 알게 했다.


그냥 바쁘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이다. 처음부터 집터를 고른 것이 아니라, 밭일도 할 수 있는, 즉 농부가 되는 300여 평의 땅을 구했던 것 같다.

시골살이를 먼저 시작한 지인이 "언니 시골은 1000평도 작아"라며 나에게 한 말이 그대로 내 귀와 마음에 그대로 콕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1000평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지는 그때는 몰랐다. 이제는 안다. 그 마음조차 땅에 대한 욕심이다.


땅에 대한 욕심은 왜 생긴 걸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서, 아니면 단지 땅을 가지고 싶어서 그랬을까? 어떤 이유든 나는 땅 자체를 줄일 생각 없이 땅을 보러 다닌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땅 500여 평을 우리 부부는 소유했다. 


법정 스님에게 나는 변명하고 싶다. 이 땅은 절대 불필요하지 않아요. 나는 여기서 이 땅을 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소유가 아니라, 쓸모가 있어요.



속이 보이는 변명이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보상"이라고 말이다. 봄담에서 노년의 삶은 "다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삶"을 지내리라 생각한다.

시골로 이사한다는 것은 많은 돈을 벌어보자는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적게 벌어 적게 쓰고 살아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농사를 크게 운영해서 제2의 경제적 삶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시골살이를 준비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나의 소비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솔바람 찍음- 2020년 5월의 오대산




온전한 나를 위해 조금은 느리지만 하루하루 집중하는 시간의 흐름을 보고 싶다.  몇 년 동안 나는 봄담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서 준비했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삶의 밑거름이 과연 어떤 것인지, 어떤 형태로 그 길을 찾아갈 것인지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물이 '봄담'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면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일상이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작은 용기로 조그마한 일상의 변화를 맛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힘들게 산다.



느리다는 것은 축 처져 있다는 뜻이 아니다. 도시에서 빠르고 급하게 뇌와 몸을 움직였다면 적어도 봄담에서는 깊이 있는 삶을 찾아가고 싶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집 모양을 많이 생각했다. 여러 형태의 집들을 보면서 이상적이고 매력적인 집들에 매료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건축 디자이너들의 예술적인 집부터, 방송에서 나오는 '집'의 이야기를 보면서 집마다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았다. 나는 어떤 이야기로 집을 짓고 싶은지 물었지만, 이 순간에도 잘 모르겠다.


나는 오래된 한옥이나, 한옥을 리모델링하거나, 페인트로 벽을 칠한다든가, 내부 마감을 나무로 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지을까? 저렇게 지을까를 수없이 바꾸었다.

또한, 건축설계사를 만나지 않고 직접 짓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직접 지으면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막상 집짓기가 다가오면서 로망보다는 현실적으로 단열이나 기밀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나의 선택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선택했다. 집은 따뜻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집터는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어 그저 남쪽으로 지으면 된다. 나는 봄담이 나와 자연과 함께 늙어가기를 원할 뿐이다. 내가 늙어가는데 집은 늙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봄담도 나와 남편과 함께 잘 늙어가는 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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