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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May 29. 2023

거룩한 밥상공동체

봄담을 위한 칸타빌레

밭일을 못 하지만 집에서 밥하고 요리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서울에서 밤낮없이 일하면서 아이 둘을 키웠다. 서울이라는 곳은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영혼마저 기꺼이 바쳐야 그제야 기회라는 놈이 오곤 했다. 가끔은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위안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낭만도 사라지고 지친 영혼을 쓰다듬어 줄 수 없는 곳이 서울이지만, 나의 아이들만큼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마을에서 키우고 싶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서울을 떠나서 살기 힘들었다. 도시에서 아이를 나의 가치관으로 키우기란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사무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찾아 성미산마을로 들어왔다. 성미산마을에는 공동육아를 하는 어린이집과 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12년제 학교가 있는 곳이다. 성미산마을은 망원동과 가까이 있으며 높은 빌딩 숲이 아니라 다양한 주택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주택의 다양한 구조는 얼마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식의 규정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삶을 살든 상관하지 않고 아이들도 자신을 어느 아파트에 산다는 식의 의식은 생기지 않는다.


나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하는 말이 "엄마, 나는 아파트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 줄 알았어. 너무 좋은데, 왜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지 않았지!"


지금도 대답은 똑같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육아가 성미산마을에서 시작되었고, 서울의 대안교육도 여기서 출발했다. 교육관이 비슷한 부모들이 모여 만든 동네로 아이를 이곳 '성미산 마을'에서 키우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주저 없이 마을로 입성했다.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아이들이 성장한다. 나의 가치관은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낮과 밤 일하면서도 나는 아이들 밥상만큼은 내가 직접 해 먹였다. 유기농 가게에 있는 재료로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렸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국어니 수학이니 하는 교과서적인 공부는 아니었다. 밥 한 끼 먹이는 것이 전부다. 엄마가 차려 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그것이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힘이 되었다. 나는 밥 먹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래야, 정이 생기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어릴 적부터 떠돌아다니면서 '엄마의 밥상'이 그리웠나보다. 



엄마 밥 먹고 아이들이 자랐다.


아이들이 마을공동체에서 자라는 동안, 나도 학부모들과 함께 밥 먹고 성장했다. 지하철 타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순간부터 나는 늘 을乙로 바쁘게 산다. 늦은 저녁이나 밤샘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하다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었지만, 희한하게 바쁠수록 동네 사람들과 밥 한 끼 먹을 때가 한없이 좋았다. 산다는 것이 뭐 별거인가, 따뜻한 사람들과 밥 먹으면서 수다 떨고, 아이들 커나가는 이야기 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지. 거창한 요리를 하지 않았지만, 밥맛은 최고였다.


그렇다고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루를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다 한 끼 밥을 먹는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하고 감동을 주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별에서 살아가면서 잠시 아주 잠시 함께하는 시간.


그 시간은 다름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다. 충분하지도 만족하지도 않는 상황들도 늘 있다. 그것을 견디고 보듬고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참 다행인 인연'이다.

하지만, 서로 상처를 주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헤어지게 되면 슬프지만, 그것 또한 견디어야 하는 시간이고 만남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자신의 방에서 밥 먹을 때만 삐죽 나왔다. 거룩한 밥상에 대한 고민이 한없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라떼는'을 주워 담으면서 혼자 밥 먹는 시간이 자주 있게 되고, 아이들은 이제 품에서 떠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밥 하는 시간이 귀찮아지고, 나이 들어갔다.




누가 찍었을까? 여기 있는 지인 중에 한 분이 분명 찍었다.- 함께 밥 먹는 사람들




그러다, 봄담이 생겼다. 땅이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말았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며 내가 선택한 인생이다. 땅의 부름을 받았으니, 무언가는 마음을 먹어야 할 듯하다.

마음 비우고, 몸 키워서 땅과 친해져야 봄담이 살아난다는 것을 잘 안다. 도시처럼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침묵하고 순응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밥 먹기 위해 조그마한 땅을 일구는 것은 밥상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봄담의 밥상은 어떨지 벌써 궁금하다. 

햇살 받아 텃밭이 자라나고 그러다 땅에서 자라나는 갖가지 채소를 뜯어 그날그날 따뜻한 밥을 한다.

땅과 친해질 수 있는 내 삶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고, 못하는 손길도,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내려놓고 오늘 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봄담에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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