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 사이에서 춤추는 청춘
‘촉’은 어떤 의미로 영업에 존재할까? 그것은 먹잇감이 있는 곳을 놓치지 않는 일종의 생존법칙인 것 같다.
그 시점에서 해야 하는 것은 '일을 파악'하는 것이라 여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건가?
끝이 보이지 않는 태양만 뜨겁게 이글거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자그마한 쪽배 같았다. 부모로부터 받을 금수저도 없지만, 나는 그냥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처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일이 어떤 것인가?
그리고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인가?
돈벌이 수단으로, 아니면 나의 꿈을 위한 밑거름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성공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피 끓는 청춘을 정말 구워서라도 채워 놓고 싶었다.
‘나의 작은 디자인 사무실’
이 사무실은
나를 꿈틀거리게 만들었고, ‘촉’을 가지게 만들었다.
여럿이 함께 쓰는 쪽방 같은 느낌의 작디작은 작업실을 ‘나의 꿈을 위한 밑거름’으로 생각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금 없이 출판하기란 매우 어리석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디자인 사무실이다. 오로지 책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디자인 사무실.
역설적이지만, 이 디자인 사무실이 이제는 나의 전부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은 디자인 작업실에 일을 줄 곳을 찾아다녔다. 부산대학, 경성대, 동아대, 서면 등 학교마다 사회과학 서점이 많이 있을 때였다. 그때는 책을 살 때 책 표지를 싸서 주었다. 우리는 몇 군데 서점의 책 표지 포장지 인쇄를 맡게 되었다.
46판 4절 별색 2도 500장의 인쇄물은 나를 인쇄소에서 큰소리치는 까다로운 디자인 실장으로 거듭나게 했다. 겁도 없던 시절, 16,000원의 인쇄비용이 들어가는 일로 그렇게 큰소리치면서 인쇄소에서 밤샘을 밥먹듯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디자이너들이 지시한 색상을 최대한 정확하게 인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고, 클라이언트들에게 정확한 시일 내에 납품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나는 인쇄소 기장(기술자들의 장)들과도 친해지고, 인쇄소 사장들과도 친해졌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거래처 실장이었지만,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그때는 인쇄를 위해 PS판을 제판실에서 인쇄소로 옮겨야 했다. 그 일은 무조건 나의 일이었다. 새벽녘에 겨우 인쇄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부산 미문화원 길을 수도 없이 판을 들고 다녔다. 일명, 판순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행복하다.
이렇게 전체적인 인쇄제작과정을 발로 뛰면서 배웠고 배우면서 클라이언트들을 만났지만, 역시나 영업에는 소질이 없었다. 다만, 한 번 거래를 트면 관리하고 유지해서 주 고객으로 만드는 힘은 있었다.
나만의 열정사전
PS판
: 평판인쇄를 위한 네거티브 판으로 빛을 쪼여 현상하는 매우 중요한 기술을 요구했다.
: 현재-
CTP(Computer To Plate)는 기존의 필름 인쇄방식과 다르게 필름 과정 없이 컴퓨터상의 데이터를 직접 인쇄판으로 출력하는 시스템, 종래의 제판 기술에서 필름에 의한 인화 공정을 생략.
: 제판 기술은 7여 년의 세월 동안 배워야 고급 기술자가 되었지만, 인쇄기술의 발달로 가장 급하게 사라진 직업이다.
색상 감리
: CMYK로 하는 4도 인쇄와 별색(칼라를 만듦)으로 하는 인쇄가 있다. 색상 감리는 인쇄 감리를 할 때 매우 중요하다. 신경을 쓰는 만큼 색상은 다르게 나온다. 디자이너들이 애써서 만든 작품을 최대한 빛나게 하는 공정과정 중 하나다.
: 인쇄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살았다. 인쇄소는 자주 바꾸는 것보다 몇 군데를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