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바람 Apr 11. 2023

농부 시부모를 만나다

인생, 참

봄담- 봄을 담다, 봄의 담소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집을 짓게 되었다.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이곳 봄담에서




1.

시부모 만나다


지금 집을 짓는 꿈을 현실로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내 삶에 놓여있는 시간이란 속에 턱하니 도사리고 있던 온갖 희로애락을 도망치지 않고 고스란히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초부터 우리는 노년을 시골에서 살고 싶어 했다. 막연한 로망이었다. 경상도 남자, 그것도 진짜 ‘촌’. 산청이 남편의 고향이자 성장한 곳이고 지금도 시부모님이 살고 있는 곳이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시부모님의 삶은 사실 너무나 현실적이었지만, 결코 그것을 가져와서 현실로 담아 내지 않았다. 오로지 시어머니의 삶은 시어머니의 삶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 삶은 또 다른 판타지로 여기고 있었다.


결혼 생활 25여 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태 계절마다 땅에서 나오는 쌀이며, 감자, 마늘, 고추, 열무, 양파, 깨소금,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멸치 액젓, 들기름, 참기름, 집간장 등 세상 귀한 것을 한 번도 사먹지 않았다.


한번씩 해가 뉘엿뉘엿 할 때쯤, 느끼곤 한다. 말과 마음뿐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동안 밭일을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집안에 행사가 있는 날만 내려가기 때문에 그저 얻어먹는 재주만 세월만큼 늘어났다.

그런 내가 시골살이를 자처한다는 것이 영 시원찮았지만, 그래도 시부모님이 주신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시골 농부의 아내들은 대부분 그랬을 거다. 우리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18살에 시집와서 지금의 쌀 창고인 마당 건너 작은 곳에서 조부모의 3년 상을 치렀다. 그 어린 나이부터 농사꾼의 아내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이 집의 며느리로 평생을 살았다. 막내며느리임에도 조상이 있는 산청에서 농사를 짓고, 사돈의 팔촌이 와도 손님상을 차렸던 어머니의 삶은 이제는 자식들의 가족들까지 먹여 살리는 삶을 사시고 계시다. 오랫동안 연골은 닳고 닳았고, 아픔도 그만큼 참고 참았던 시간들.


뜰 무렵부터 해 질녁까지 고단하지만,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땅에서 살아 오신 그 분들의 삶이 현실로는 애달프게 다가왔지만, 마음은 그들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은 아마도 한결같이 자식들을 위해 지금도 밭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올해는 그만 하시기를 바랐지만, 어머니는 못내 나에게

 “너희들 줄 것은 당연히 했지~” 하신다.

고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