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은 가끔,
예고 없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계절처럼, 혹은 기억처럼.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른다. 예전부터 그랬다.
가끔 찾아오는 우울함 앞에서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약이 그 감정을 눌러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완벽하진 않았다.
어쩌면 내 감정을 회복시키는 힘 자체가
예전보다 약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의 역치가 낮아진 것도 있고,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듯 튀어나오는 순간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해 더 우울해졌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면 된다.
슬프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감정이 결국 눈물로 흘러버린다. - 서른이 넘었는데도, 그리고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 분명하다. 어떻게 3번만 울 수 있지. 난 오늘도 운 거 같은데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무던했던 내가 참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너무 예민해졌다.
그게 약점이 될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우울할 때 뭘 하며 자신을 다독이는지 궁금했다.
심지어, 우울증이 없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본다더라.
그 말이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그 사실만 곱씹기도 했다.
나는, 우울하거나 슬플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지치거나 힘들 때도 마찬가지다.
쉬는 법도 모르고,
놓는 법도 모르고,
멀티태스킹은 커녕 하나만 무너져도 나머지를 챙기기 어렵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천천히, 오래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다.
좋게 보면 신중한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굼뜨고,
어쩌면 겉으로 보기엔 '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하는 답답함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에게 생긴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글을 쓰는 것.
내가 다니는 병원 원장님은 글쓰기를 ‘양날의 검’이라 말했다.
순간 집중은 좋지만, 글을 쓰는 동안 트리거가 반복해서 소환되고,
기억을 반추하고, 플래시백을 겪다 보면
체력과 정신력이 동시에 고갈된다.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그럼에도 계속 쓴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담기 어렵지만,
글은 괜찮다 싶으면 살려두고,
아니다 싶으면 지워버리면 되니까.
말은 빠르지만 남고,
글은 느리지만 다듬을 수 있다.
나는 가끔 글을 써서 어딘가에 올린다. 지금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올리는 것처럼.
그건 내 방식의 구조 신호다.
누군가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
누군가 "괜찮아?" 하고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소망.
물론, 진짜 괜찮냐고 물어본다면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쩌면 나의 은인일 수도 있다.
혹은 나를 이해해주는 한 사람일 수도 있다.
당신이
이 순간,
나의 글 친구가 되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