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분들의 사춘기 어떻게 지나가셨나요?
내가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는 오히려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사춘기라는 건 어찌 보면 더 성숙해지기 위해 겪는 1차 전직 같은 시기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사춘기를 ‘반항의 시기’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지는 중요하지 않고,
“감히 어른에게 대들어?”라는 생각만 남는다.
아마도 이건 예부터 내려온 유교사상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자식도 자식 노릇이 처음이다. 서로가 처음이기에 어떤 게 맞는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무엇을 원하는지—그걸 알아주고 위로해주어야 할 때가 참 많이 찾아온다.
내가 어릴 때 겪은 사춘기도 마찬가지로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부모님은 이미 한 번은 지나온 그 시기를 조금 더 이해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아이의 눈으로, 아이의 시점으로 한 발 물러서서 함께 바라봐주는 것.
그게 반항의 시기를 조금은 물 흐르듯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성인이 되어 나를 돌아보니,
내 사춘기는 늘 침묵이었다. 이해받지 못했고, 공감받지 못했기에.. — 지금 아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거 같다. 부모에게 더 큰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들은 말한다.
“우리 아이는 공부 잘하든 못하든, 착하고 바르게만 컸으면 해요. 그거면 충분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글도 남보다 빨리 깨우쳐야 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해야 하고,
더 좋은 학교를 가야 한다는 부담을 주곤한다. - 지금 사교육 열기를 보면 그 반증이 아닌가싶기도 하고.
그리고 사춘기의 방황이 오면, 이해와 공감은커녕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 아빠한테 말대꾸를?!”
그렇게 다그치는 모습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도 많이 봐왔다.
공부 환경은 좋아졌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이들이 훨씬 더 불안정해진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우려가 마음에 남았다. 어떤 이는 말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당신은 모른다. 부모도 조급해서 다그치는 거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정교육이란, 아이들은 뛰어놀 나이에는 뛰어놀아야 하고,
정서적 안정과 독립심을 키우려면 함께 있어주는 가족이 필요하다.
내가 젊은 꼰대 같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사실… 나도 속은 좀 늙어버린 사람 같으니까.
물론, 금전적 안정도 중요하다. 그러나 금전적 안정을 이룬 뒤에도 끝없는 물질적 쫓김에 몰두한다면
아이들은 결국 혼자 남겨진 ‘나’로 성장할 위험이 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을 하나하나, 낱낱이 기억한다.
좋았던 순간도, 안 좋았던 순간도.
내 어린 시절도 그랬다. 안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특히 부모의 사랑이 더더욱.
오늘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사랑으로 꼭 안아줄 수 있는 하루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