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오늘을 나는 잊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리움까지 희미해지는 건 아니더라. 오히려 더 짙어진다.
하나라도 더 사진을 찍어둘걸, 녹음이라도, 동영상이라도 남겨둘걸—
지금 내가 가진 건 고작 사진 한 장뿐이다. 그 사실이 가끔은 참 서글프다.
괜히 내가 이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디선가 하얀 나비가 날아든다.
떠나던 해도 그랬고, 그다음 해도, 또 그다음 해도…
그건 계절 탓일까, 혹은 정말 하늘에서 “지금쯤 한 번쯤 내려가보렴” 하시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저 그분이 한 번 다녀가셨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나도 참 우스웠다.
항상 멋진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이 그렇게 내 마음처럼만 흘러가지 않기에,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다.
감히 얼굴을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또 참 이상하지. 그렇게 꿈엔 한 번도 안 나오시고 늘 나비로만 곁을 스치고 가신다.
이제는 목소리도 가물가물하고, 사진첩을 뒤적여야 겨우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만
그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좋았던 순간들, 작은 웃음과 따뜻한 손길—
사람들은 말하지.
좋은 기억은 빨리 잊히고, 아프고 슬픈 기억은 오래 남는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 같다.
그분과의 기억은 내게 아프기보다는 따뜻했고, 슬프기보다는 고마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더 깊은 그리움이 되어 남았다.
내가 살아야 했기에, 살아내야 했기에
그날 이후에도 하루하루를 꾹꾹 견디며 살아왔다.
잘 살아냈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낸 나에게
스스로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날들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이만큼 온 것도 기적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깊은 우울이
올해는 유난히 조용하다.
예전처럼 무너지지도 않고, 다만 마음 한쪽이 조금 저릿할 뿐이다.
시간이 흐른 탓일까? 아니면 이제 그만 슬퍼도 된다는,
그분의 다정한 배려일까.
이제는 내가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움은 여전하지만, 슬픔은 조금 덜어졌다고.
그리움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그 슬픔은 따뜻한 기억으로 천천히 변해가는 중이라고.
다만 하나, 작은 욕심이 있다면
그리운 당신이 이젠 한 번쯤,
꿈에라도 나와주셨으면 좋겠다.
손주가 많이 보고 싶어한다고, 혼자 속으로만 되뇌이고
그 말 한 마디를 못 건네는 게 매 년 매 시간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