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심, 저항감 그리고 침묵

by 딥페이지

오랜만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많은 사랑과 손길이 필요하던 내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적응하기 바쁜 하루였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가야 했던 나. 친구들과 친해질 즈음하면 이별을 하더라.

그리곤 새로운 학교로 가서 또 내 소개를 하고 또 적응을 해야 했다. 덕분에 향수병과 반항심은 날로 늘어갔다.


사춘기가 막 접어들 때쯤, 부모님은 이혼을 선택했다. 초등학교 시절, 강탈해 가던 그때와 다름없었다. 왜냐고? 나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겐 선택권이 없었거든. 그냥 받아들여야 했을 뿐.

내가 제일 반항심이 컸을 때는 아마 중학교 1학년, 2학년쯤? 요즘은 사춘기가 더 빠르다고 하던데..

나는 저 나이쯤 해서 방황이 길었던 거 같다. 아무튼, 반항심이 컸던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자존감을 깎아 먹었다고 할까? 학기 초면 학급의 반장과 부반장을 투표하는데 이게 웬걸? 부반장이 됐었더랬다. 와.. 내가 이 아이들 무리에서 부반장? 엄청난데? 싶었다. 그날 저녁, 내게 부반장 타이틀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집안이 불우한 거랑 고작 한 학기 동안 하는 부반장이란 타이틀이 무슨 상관이지 싶었다.

축하는커녕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많아지던 시점이라 요즘말로 멘탈이 더 갈렸다.

관심도, 사랑도, 자그마한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지 않는 내게 부모란 존재가 왜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고 싶었고, 다른 가족들처럼 한 달에 한 번 외식이니, 년에 한 번씩 여행이니 그런 건 없어도 소통만큼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린 마음에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지냈다.


개뿔.. 그런 거 하나 없었다. 색을 밝히니 자식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덕분에 반항심은 사라지고 저항감이 생겼다. 누구는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결혼생활을 2번이나 망치고,

회피하고 도망치는 게 다인 그 사람에게 남은 정이라고 1%도 남아있지 않았거든.

나는 또 하필 집에서는 장남이었던 터라, 듣지 않아도 될 말들, 원치 않는 소식들을 접하며 혼자 삭히기도 많이 삭혔다.

처음엔 내가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라며 나를 탓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말려도 말려질 사람이 아니었더라.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돌아서면 결국엔 남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냥 멀어지니까 멀어지는구나 했을 뿐이지.- 지금이야 나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삶이 너무 좋다. 다만, 그때는 모든 게 미웠다. 그놈의 집안기둥이기에 짊어져야 했던 짐들, 말들, 소식, 연락.. 그래서 침묵을 택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았으며 가족, 친척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좀 살겠더라. 그러고 나니 내가 모르고 있던 정신적 질환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신체화로 나타났더랬다. 그 시기에 지금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진즉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나 또한 아무도 찾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는 것이 다인 인생이 뭐가 쓸모가 있을까 싶었던 거지. 굉장히 큰 우울과 심연을 헤매게 됐다.

지금이야 웃프게도 만성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된 지 오래라 그런 감정 하나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게 됐지만 말이야.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데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내야 한다면, 부모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 관계의 진전은 없다. 내가 느낀 바로는 그럴 때는 저항하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 봐달라고 저항하라.

그럼에도 개선이 없으면 침묵하라. 침묵하고 부딪치지 않는 것만이 그나마 공생할 수 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있으면 최대한 빨리 벗어나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다 옛말이다.

유교사상이 짙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효도라는 게 부모자식 간의 최고의 덕목이라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숨 쉬며 살 수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멀어진다고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저항하고 침묵한다고 당신의 잘못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 존재가 부모라고 할지라도.

내가 숨 쉬고 살아야 주위도 둘러볼 힘이 생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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