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이 되면 여자친구와 10년을 같이 한 날이 된다. 10년이라니.
어느 유튜브 채널에 조회수 많은 영상처럼 장기연애를 하고 있다.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짐작 가는 사이.
사실 나는 썩 좋은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말썽도 부리고, 10년을 오는 동안 잘못한 일들이 차고 넘친다.
남들에게 사랑꾼처럼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마냥 컸었던 적도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사랑꾼처럼 보인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 5년, 10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게 마냥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 덕분에 무던히도 많이 싸웠다.
어린 시절, 배우지 않아도 됐을 가르침 덕에 나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굉장히 느려서 다툼이 일어나면 입꾹닫을 시전 했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한 게 맞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리조차 힘겨웠으니까.
그래서 어떤 때에는 조곤조곤 대화하는 법을 몰라서 목소리를 키우거나 화를 삼키지 못해서 나를 때리거나 리모컨 따위를 던지기도 한 적이 있다.- 못됐다 못됐어.
하지만, 여자친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화가 나면 평상시보다 훨씬 더 차분했고, 훨씬 더 이성적이게
바뀌는 사람이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지.
지금이야 대화로 풀 수 있고 혹은 각자만의 시간을 갖고 이 부분은 이랬다 저 부분은 저랬다 하며 여차저차해서 풀기도 가능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박박 우기던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몰라도 한참 몰랐고, 몇 년을 사귄 후에야 알게 된 점도 있고, 10년을 지낸 지금도 아직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은 사이가 됐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연인을 넘어 이제는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된 것만 같다.
어느 작가님이 그런 말을 했다.
“장기연애를 한 커플들이 이별을 하고 나서 겪는 후유증은 본인의 부모, 형제를 잃는 것과 동일한 파장을 일으킨다.”
처음엔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서 알아가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고 사랑이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연애감정보다 편하고 또 편안한 존재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면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일 가깝다고 생각되니 가끔은 볼멘소리도 나오고, 서운한 감정도 제일 빨리 드러난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거 같다. 좋은 음식, 좋은 장소, 따로 마주하게 된 환경들을 보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듯이,
다툴 때도 이런 게 서운하고 볼멘소리 하게 되고 잔소리하게 되는 것.
어쩌면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 사귀다 보면, 안 들어도 될 오지랖도 듣게 된다. 장기연애중이라고 했더니,
‘여자친구를 10년 넘게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한 분이 있었다. 누가 10년이나 연애하냐고,
그전에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며.. 마음이야 굴뚝의 구멍보다 훨씬 컸었을 내게 그 말은 표현되지 못한 상처였다. - 지금도 결혼의 마음은 크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나다.
무슨 말인진 알지만,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참견이 아닌 기분 상하게 하는 오지랖.
어쩌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알아서 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장 결혼을 하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우리 둘 다 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있기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다면 하고 싶다.
누군가에겐 뚝딱 하면 가능한 일일지라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거나,
지레 무서워서 건너지 않는 우리에겐 신중한 사안이기도 하니까! 천천히 결정하리라.
21살의 나와 24살의 그녀가 만나, 31살의 나와 34살의 그녀가 됐다.
강산이 한 번 바뀐 이 해에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더 오래도록 같이 있고자 하는 꿈.
다시 또 1주년을 세고 있겠지. 덕분이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당신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