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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육 Feb 29. 2024

죽음의 생산성

우울증

요 며칠간 난 죽어있었다

아마 우울증일 것이다.

실제로 난 우울증 환자였다.


내가 우울증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 있는건

의학 혹은 과학에서 얘기하는 호르몬 불균형적 이야기보다

균형잡힌 영향소를 섭취하고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단 이야기보다


터널에서 그림자가 넘어가고 다시 찾아오듯

우울증은 언제든 나에게 다가왔다 멀어진다는 것이다.


삶에서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

거부하려 하여도 거부할 수 없는,

빛과 그림자 처럼


그럼에도 난 이 사실을 잊고

요며칠내 이유모를 우울증에 맞서고 밀어내려 애쓰다 몇자 끄적여본다.


1월 무렵 친구가 강아지를 떠나보냈단 소식을 듣고 적은 글이다.


죽음 앞에서야 난 '삶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누나가 떠났을 무렵 어떤 때 보다 삶이 현실답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어떤 가치관과 정답이라 불릴 개념들도

죽음 앞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이다.


얼마전 밍밍이가 떠났다.(떠난 친구강아지)

개인전시를 목표로 촬영과 서현씨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던 강아지다.


나이가 많았고 건강했다.

한해가 지나기 전 밍밍이가 쓰러졌다는 소식과 며칠전엔 생을 끝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촬영했던 서현씨의 인터뷰를 한참 돌려봤다.

당신이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도

실패해도 다음이 있다는 얘기도 아니었다.

뇌과학도 투자도 이런 뭣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들을 데려왔고 더 함께하고 싶고

내가 그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하는지에 대한 지고지순한 이야기였다.


난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진만 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싶진 않다.


작성 후 이런 글이 매우 낯설면서도

나 다울 수 있는 글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나로써 나에게 맞닿은 듯한

아니, 내가 바라던 나로 살게 된 순간


끄적이는게 무엇이라고 난 고작 글 몇자로 사념에 빠졌다


단순히 병리적 증상이라 여겨지는 우울증이

혹은 긍정과 부정에 잣대지어 부정적 측면이 많은 우울증이

나에게 진정한 삶으로써 다가온다.


부정적 감정이든 우울증이라 불리는 무엇이든

그것을 그저 밀어내고 그 속에서 괴로움을 가속하는 게 아니라

우울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간혹 이런 정서가 찾아오더래도 그것은 우리에게 오답이 아니라

내 자연스런 한 모습이라는 것.


"제 우울증을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우울증은 제 친구거든요."


삶이 힘들어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어

'우울증'을 주제로 방송을 했던 때 어떤 시청자가 와서 해준 말이다.


난 이날 이후로 하루에 13개식 먹었던 알약을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에선 어떤 공황증세 약도 진정제도 먹지 않게 됐다.


우울증은 죽음은

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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